성탄 캐롤 금지 /목회자 60명이 만든 성탄 플래시몹 2016-12-22 20:52:57 read : 364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원조 산타 나라서 성탄 캐롤 금지” 터키 교육부 통보
성탄절을 앞두고 터키 교육당국이 한 고등학교 외국인 교사들에게 성탄 행사를 금지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엔 캐롤송 부르기도 포함돼 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21일(현지시간) “원조 산타의 나라에서 성탄 캐롤이 금지됐다”고 보도했다. 터키는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聖) 니콜라스(270~343) 주교가 활동하던 곳이다.
발단은 이스탄불 소재 에르켁 리세시고 독일인 교사 35명이 터키 교육부로부터 성탄절 행사 금지에 대한 이메일을 받으면서다. 교육부는 “학교에서 성탄절에 대해 가르치는 행위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인 교사들은 두세 달 전부터 학생들과 함께 성탄 캐롤 콘서트와 합창 행사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학교 측은 교사들이 교육당국의 감독과 학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며 이 같은 행동은 독일과 터키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독일 외교부도 “우리는 이스탄불 리세시고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성탄 문화 교류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 독일과 터키의 오랜 우정의 전통을 막는 것 같아 유감”이라는 입장을 지난 17일 표했다.
일각에서는 터키 당국의 강경한 입장이 최근 강화되고 있는 이슬람주의의 영향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독일 온라인 포털인 ‘디켄’은 터키의 정의개발당 무스타파 센톱 의원의 말을 인용, “터키 신헌법은 공교육 기관에서 포교나 개종행위를 금지한다”고 전했다.
1884년 설립된 에르켁 리세시고는 독일과 터키 정부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독일어와 터키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한다. 양질의 수업을 제공해 입학 경쟁이 뜨겁다.
한편 니콜라스 주교는 터키 남부 리시아(현 뎀레) 주교로 활동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선행을 했다. 기독교 교리의 체계를 확립한 325년의 니케아 종교회의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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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60명이 만든 성탄 플래시몹
하나, 둘, 셋! 메리크리스마스!
60명의 목회자들이 거리로 나오다.
지난 12월 16일 저녁,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목회자 합창단(단장 김학중 목사)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수원 아비뉴프랑 광장에서 ‘2016 성탄 플래시몹’ 연말공연을 펼쳤다.
이날 공연에서는 경기연회 목회자들 약 60여명이 각각 청소부, 집배원, 소방관, 경찰관, 택배기사, 노숙인, 행인 등으로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을 하고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광장으로 모여 미리 준비한 성탄 찬양과 캐롤에 맞춘 율동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오 거룩한 밤’을 부르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영하 10도에 강추위 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지나가던 많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며 함께 축하했다.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따뜻한 시간이었다.
올해 경기연회 목회자 합창단은 이와 더불어 지난 6월 찾아가는 콘서트의 일환으로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남부구치소에 찾아가 위로와 희망의 찬양을 나누었고, 지난 10월에는 2000여명이 관객들이 함께한 경기연회 목회자 합창단 제 6회 정기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정기연주회 수익금 전액은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젝트에 사용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경기연회 목회자 합창단은 우리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 예수님의 오심을 전파하고 나누는 실천을 이어갈 계획이다.
※ 플래시몹
불특정 다수인이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특정한 날짜ㆍ시간ㆍ장소를 정한 뒤에 모인 다음, 약속된 행동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흩어지는 모임이나 행위를 일컫는 말. 특정 웹사이트의 접속자가 한꺼번에 폭증하는 현상을 뜻하는 ‘플래시 크라우드(flash crowd)’와 뜻을 같이하는 군중이란 뜻의 ‘스마트몹(smart mob)’의 합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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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복희 "누가 협박했느냐" 묻자 "기자님, 제가 한국 떠났으면 좋겠어요?"
힘 있는 정치인이 협박했음을 암시 "나는 '박 대통령 내려오라' 압력 거절했다"
“한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박 대통령 내려오라’고 말하면 공연하게 해 주겠다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지요.”
가수 겸 뮤지컬배우 윤복희(70·서울 온누리교회·사진)권사가 한 유력 정치인이 자신의 콘서트를 막아 취소됐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윤 권사는 이 정치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윤 권사는 1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이로 은파교회(강병복 목사)에서 열린 음악콘서트와 전화인터뷰 등에서 “정치인 이름을 차마 공개할 수 없다. 제가 한국 떠났으면 좋겠느냐”며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협박한 정치인의 이름을 공개하면 한국에서 떠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 있는 정치인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는 “66년째 딴따라 한 사람이다. 그럼 오죽 인터뷰를 많이 했겠느냐. 코너에 몰린 사람을 풀어주려고 하얀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요즘 자신의 본업이 찬양집회 다니는 것이라고 밝힌 그는 “저한테까지 이럴 정도이면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얼마나 아픔당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생각한다”면서도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 정치인을) 용서했다. 주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회개하게 하시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윤 권사는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4일 인천 남동구 예술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예정된 ‘데뷔 65주년 기념 콘서트'가 한 정치인의 방해로 취소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이달 24일 공연할 곳을, 최근 저를 괴롭히던 정치가가 공연을 못하게 해서 극장 측이 어이없게 관객들의 표 값을 다 물어줬다”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들이 절 보고 ‘박 대통령 내려오라’고 말하면 공연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면서 “어이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를 모르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66년간 무대에서 공연한 사람을 자기들의 야망에 우리를 이용하려는 걸 보고 제 양심으로는, 전 무대에 서는 배우이지 정치적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공연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제 진실을 아실 거라 전 믿어요. 모처럼 할 콘서트를 그들이 못하게 했지만 전 계속 쉬지 않고 무대에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할 거예요”라고 글을 마쳤다.
해당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하지만 글 전문이 온라인으로 확산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윤 씨는 지난 29일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한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 주소서”라는 글을 올렸다가 반발을 사자 곧 삭제했다.
윤 씨는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나 역시 촛불 들고 나라를 위해 시위에 나간 사람이다. 우리들 보고 이상한 말을 올린 글을 보고 정중히 올린 글”이라며 “촛불을 들고 나온 우리를 ‘얼마 받고 나온 사람들’이라는 글에, 난 그 사람을 사탄이라 말했고 빨갱이라고 불렀다”고 해명했다.
한편 윤 권사가 촛불집회를 격하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콘서트 예매율이 떨어져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연티켓 판매처인 인터파크 관계자는 “전액 환불처리하고 있다. 윤씨가 SNS에서 물의를 일으켜 기획사 측에서 공연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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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션 인도 아동후원 중단 위기… 14만여명 ‘막막’
48년간 지속해온 인도 후원 활동 제동 걸리나
▲컴패션 후원을 받고 있는 인도의 어린이 프린시가 자신의 집에서 만든 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가 컴패션의 후원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가난한 인도 아동들이 위기에 몰렸다. 국제 컴패션 제공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이 48년간 지속해온 인도 아동 후원 활동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최근 인도 정부가 자국의 해외기부제한법(FCRA)을 근거로 국제 NGO 활동에 제재 조치를 가하면서다. 당장 인도 어린이 14만5000여명이 절망 속으로 내몰리게 됐다.
18일 국제컴패션과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에 따르면 인도에서의 컴패션 활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컴패션은 1968년부터 인도의 가난한 아동을 후원해왔다. 인도 전역의 580개 개발센터를 통해 가난한 어린이를 양육해왔다. 후원금은 연간 5000만 달러(593억원)로 국제 컴패션의 전체 후원금 가운데 9%를 차지한다.
갑작스런 후원 중단은 인도 정부가 FCRA를 엄격히 해석, 적용하면서다. 인도 정부는 지난 10월까지 580개 컴패션 개발센터로 하여금 정부에 등록토록 했으나 이 중 63개 센터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했다. 또 해외 후원금이 인도 컴패션 사무소로 제공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FCRA는 해외로부터 기금을 받는 인도 내 자선단체를 통제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이다. 2011년에는 인도 정부가 지향하는 철학과 해당 NGO 단체의 의견이 다를 경우 그 활동을 제한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2014년부터 부상한 힌두 국가주의도 기독교적 가치를 지향하는 국제 NGO 등에 대한 감시와 박해를 조장하고 있다.
국제 컴패션 측은 강력한 힌두교 배경을 강조하는 인도 정부가 기독교 NGO인 컴패션을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컴패션은 최근 미국 하원외교위원회 보고에서 “컴패션을 (인도에서) 쫓아내기 위해 전례 없이 고도로 조직화된, 의도적이며 체계화된 공격”이라고 밝혔다. 컴패션은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가난으로부터 구하는 것’을 사명선언으로 표방하고 있다.
현재 국제 컴패션은 양육 프로그램이 재개될 수 있도록 후원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나섰다. 미국 컴패션은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속 스태프와 50만명의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상원의원에게 보내는 탄원서 작성 캠페인도 시작했다.
한국 컴패션 관계자는 “국제 컴패션의 인도 철수는 아직 결정된 상황은 아니다. 이번 제재 조치는 규모가 큰 여러 NGO를 타깃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도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국 컴패션은 1만여명의 인도 아동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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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보내라며 성탄절에 예배 안 드리겠다는 교회
주일과 겹치며 미국에서 논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윌로우크릭교회 예배 전경. ⓒ윌로우크릭교회
올해 12월 25일 성탄절은 주일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에 맞추어 주일 예배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기로 한 교회들도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보도했다.
미국에서 ‘성탄절 주일예배를 드릴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일리노이주 사우스배링턴에 소재한 윌로우크릭교회는 크리스마스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 대신, 가족들이 집에서 함께 볼 수 있는 DVD를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올해는 일부 성탄 전야 예배 뿐 아니라 성탄 예배도 드리기로 했다.
윌로우크릭교회 행정을 맡고 있는 히더 라슨 목사는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성탄절까지 9번의 예배를 드리고 성탄 예배는 오전 10시에 드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라슨 목사는 “주일이 성탄절이었던 마지막 해가 2011년이었다. 당시에 빌 하이벨스 목사와 가족들이 아름다운 예배를 인도했다”면서 “올해는 교육 목사인 스티브 카터와 내가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인도할 계획이다. 매우 훌륭한 성탄 예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윌로우크릭교회와 달리 다른 대형교회들은 성탄 예배를 드리지 않기로 했다. 조지아주 알파레타의 노스포인트 커뮤니티교회를 이끄는 앤디 스탠리 목사도 성탄 예배는 드리지 않을 계획이다.
노스포인트 교회는 과거 성탄절이 토요일인 해에도 주일예배를 취소했었다.
사역 환경을 책임지고 있는 빌 윌리츠 행정 목사는 2010년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에 낀 주일은 여러분의 가족들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길 바란다”고 전한 바 있다.
윌로우크릭교회와 마찬가지로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의 임마누엘바이블교회도 성탄절에 한 번의 성탄 예배를 드린다.
임마누엘바이블교회의 스티브 홀리 목사는 “성탄 전야 때와 같은 설교와 음악으로 주일 예배를 드릴 것”이라며 “우리는 주일학교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 공부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서로를 격려하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성탄절을 여러차례 보내면서, 크리스마스 여행을 가는 가족들이 많기 때문에 성탄절 날 아이들 사역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탄절 주일예배를 취소하는 교회들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서로 격려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박해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데, 성탄절 주일예배로 생기는 불편함에 대한 어떤 불만도 지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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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출산, 죽음은 하나님의 징벌?
[주장] 창세기에 걸린 저주, 두 번째 이야기
김요한 (geunhye756@gmail.com)
창세기의 '징벌'에 대한 의심
나는 이전 글에서 야훼스트 사제들이 기록한 창세기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 첫 번째로 '원죄론'을 분석했다. 이번에는 '징벌론'이다.
창세기 내용을 보자.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었다. 그리고, 벌을 받는다. 그 벌은 다음과 같다.
- 여성은 어머니로서 출산의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남성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셨고,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이제 죽음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전 글에서 이성, 감성, 자유의지가 사탄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했었고, 대신 이성·감성·자유의지의 '악용'이 사탄의 저주이자 인간의 원죄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노동, 출산, 죽음은 어떠한가? 과연 죄를 범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일까? 아니면 그것도 축복이지 아닐까? 단지, 그것의 모종의 변형이 징벌일 뿐인데 그 누구의 '악마의 편집'(?)에 의해 수천 년 동안 기독교인들을 저주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의심이 든다. 그러한 의심을 해소해 보자.
우선, 노동.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으셔서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게다가 인간의 코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 영혼을 주신 것이다. 흙에 불과했던 인간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제외한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 즉, 우주의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이름을 지을 권리를 부여하셨다. 심지어는 당신을 대신하여 그들을 관리할 권한을 주었다.
그렇다면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은 인간이 손과 발을 통해 흙에서 나온 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어 무언가 만드는 행위다. 인간은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고, 자아실현의 기쁨을 느끼며, 타인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에 봉사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장인의 노동, 예술가의 노동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육체 행위'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 행위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행위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모방할 권리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 노동은 축복이다.
물론, 노동에는 고통이 따른다. 과거 인간은 매머드를 사냥하면서 죽어 갔다. 이러한 위험은 오늘날에도 상존한다. 더구나 계급사회 노동은 더 위험하고 고통도 크다.
우리 이웃 노동자들을 보라.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고 컨베이어 벨트에 옷자락이 끌려 들어가며 고층 건물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유독한 화학약품에 노출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한다. 더구나 계급사회에서 노동은 강제되고, 파편화·분절화된다. 자아실현이나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 된다. 따라서 노동은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무도 그런 노동에서 자아실현이나 타인에 대한 봉사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동의 본질적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경우 그 문명을 번성했고, 노동이 천시당하면 그 문명은 멸망했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노동자가 노동을 안 하면 이윤과 이자, 지대, 세금, 헌금은 누가 한단 말인가? 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인간의 삶이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출산을 보자. 출산은 남녀 간 사랑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출산을 통해 부모 간 사랑, 가족 간 사랑을 이루며, 공동체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간다.
물론, 출산은 고통스럽다. 출산 전후 과정에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혹은, 원하지 않았는데 무지나 강압, '동의 없음' 상태에서 임신이 되었을 경우, 심지어 돈이 필요해 성(性)을 팔았는데 그것이 임신으로 이어졌을 경우, 그것은 여성에게 말도 못할 고통을 준다. 나아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양육할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아니면 아이가 수학여행 갔다가 유람선이 침몰해 죽거나, 동의할 수 없는 전쟁터에 끌려 나가 무의미하게 죽을 것이라고 예상될 경우, 부모들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투쟁했고 문명을 건설했다. 성(性) 간의 사랑, 즉 에로스로서의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 공동체 간의 사랑, 궁극에는 인류 간 사랑, 모든 생명 간 사랑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신의 사랑, 즉 아가페와 가장 가까운 것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보자. 인간은 흙에서 태어났고,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물론, 죽음은 두렵다.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인간은 늙지 않고 영원히 청춘을 간직하기 위해 엄청난 애를 쓴다. 심지어 과거 이집트의 왕이나 영향력 있는 사제들은 영생을 위해 스스로 미이라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돈 많이 사람들이 영생을 위해 유전공학과 냉동 과학에 기대를 건다.
그러나 영생불멸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자. 거기에는 그리스 신들이나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즉, 이모탈(immortal)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모털들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의 삶을 부러워한다. 유한한 존재의 찰나적인 투쟁, 사랑, 죽음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들의 삶은 무료하거나 고통스러워 - 뱀파이어의 경우- 영생을 저주라고 하며 인간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노동, 출산, 죽음의 의미에 대해 보았다. 잠정적으로 말하면, 나는 창세기에 써 있는 것처럼 노동, 출산, 죽음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야훼스트 사제들을 향한 의심
그럼 왜 창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이번에도 야훼스트 사제들을 의심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노동, 출산, 죽음을 하나님의 징벌로 묘사했을까?
나는 이전 글에서 야훼스트 사제들이 이성, 감성, 자유의지가 사탄의 저주이자 인간의 원죄라 봄으로써 인간에게서 이성, 감성, 자유의지가 발현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제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었다.
이번 의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동, 출산, 죽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 감성, 자유의지의 발현 결과다. 노동은 이성의 발현 결과이자 더 나은 이성을 낳는 원인이다. 출산은 감성, 사랑의 결과이자 더 나은 감성, 사랑을 낳는 원인이다. 죽음은 자유의지의 최종적인 결론이고, 의미 있는 죽음을 낳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가능해진다.
다시 정리하면, 야훼스트 사제들은 신이 주신 선물로서의 이성, 감성, 자유의지를 인간들이 발현했기 때문에 - 또 다르게 신이 주신 선물인 - 노동, 출산, 죽음을 징벌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우선, 노동을 죄라고 여기는 것은 야훼스트 사제들만이 아니었다. 주변 메소포타미아 나라들의 창조 설화를 봐도, 설화 속 신들은 자신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기 위해 불쾌하고 힘든 노동을 대신하도록 인간을 만들었다. 그것도 피조물 중 가장 늦게. 따라서 그 지위도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지점은 인간은 당신과 닮게 창조하신 창세기 하나님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노동을 모두 동일하게 '저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이나 주변 나라 사제들은 왜 노동을 이렇게 묘사했을까? 그것은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한 번에 알 수 있다. 사제들이 '신의 말씀'을 기록(사실은 창작)하는 동안 그들을 먹여 살리고 시중을 들어야 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노예다. 그리고 사제를 비롯한 노예주, 그리고, 왕은 노예가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신의 대리자들' 아니던가?
물론 사제들은 노예의 노동이 고통스러운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노예가 필요했다. 더구나 노예는 누가 봐도 더럽고 비천하다. 따라서 사제들은 노동은 인간을 고통스럽고 더러우며 비천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사제들에게나 노예 또한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따라서 노동은 '신의 징벌'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노예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삶을 설명하는 데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는다' 이상의 논리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끔 있었을 법한 노예 반란에서 "노예해방이야말로 신의 말씀이다"라고 말할 지도자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출산이 징벌이 되어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제와 노예주, 왕은 '아이들'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예뻐해서라기보다 그들이 장래 자신들의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려는 출산이란 바로 노예를 재생산, 증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이가 노예가 될 운명인데 어미의 마음은 편할 리 없다. 더구나 당시는 피임이나 낙태가 있던 때도 아니고, 심지어 여성 노예들은 노예주의 성노리개였기에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찌 출산이 고통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 틈을 타 야훼스트 사제들은 출산은 징벌이라고 한다. 더구나 그들에게 여자란 어떤 존재인가? 남자보다 먼저 태어나지 못하고 남자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흙도 아닌 갈비뼈로 만든 '열등한' 존재인데다가, 심지어 사탄의 꾐에 빠져 남자를 유혹하여 남자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괘씸하고 악독한 존재 아니던가?
사제들에게 여자의 임신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한 범죄의 결과로 간주된 것은 아닐까? 창세기에 나온 것처럼 여성은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이니 출산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징벌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근엄한 남성 가부장이 여성을 보는 '이중적 잣대'를 본다. 하나는 모성의 강요로서, 여성은 어머니로서 묵묵히 아이 낳고 기르는 일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임신이란 여자가 음란하여 생긴 결과이므로 출산의 고통 또한 여자가 감수하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은 '아이 낳는 기계', '성 착취의 대상'일 뿐이라는 말 아닌가? 과연 가부장제 노예사회 사제들이니 할 수 있는 생각 같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보자. 죽음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원하지 않고, 또 강제된 노동과 출산에 고통받는 노예들, 그들의 죽음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그 죽음은 의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저 비참하다. 이런 운명에 노예들은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예들 사정이다. 사제와 노예주, 왕은 노예로 하여금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해야 했다. 그러면서 죽음은 인간 모두의 숙명이자 죄의 대가로, 하나님의 내린 징벌이라고 했다. 그러니 순순히 노예로 살다 노예로 죽으라는 의도가 창세기에 깔려 있는 것이다.
모든 노예가 순순히 따랐을 리 없다. 어떤 노예들은 분노했고, 반란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란 고통스럽지만, 비천한 죽음과 의로운 죽음이 있음을 알게 되고, 후자를 택하려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당시 고대사회 지배계급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노예 반란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창조 설화를 보면, 인간은 신이 진흙에 반역의 신의 피를 반죽해 만든 존재다. 다시 말해, 인간은 반역을 꿈꾸는 존재인 것이다. 그럼 인간을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 그것은 지배계급이 노예들의 반란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제들은 반란을 꾀할지도 모르는 노예들에게 경고한다. "죽음은 신의 징벌이다. 반란을 꾀하다 죽임을 당해도 우리를 원망하지 말라. 다 너희들의 원죄 때문이니까"라고.
여담이지만, 그렇다면 사제들은 어땠는가? 자신들은 영생을 위해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고, 심지어는 죽어서까지 영생하려고 미이라가 됐다. 엽기적이게도 재물과 동물, 노예, 심지어 부인과 자식들까지 같이 묻었다.
야훼스트 사제들과 헬조선 목사들
주말마다 촛불 집회가 열린다. 그 집회에는 파업 중인 노동자, 세월호 어머니, 그리고 '백남기 열사'를 추모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렇다. 창세기에서 기록된 '벌받은 자들'이다. 노동자, 어머니, 죽음이 숙명인 존재 말이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흰옷 입은 일단의 사제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꾸짖는다. 죄지은 자들이 또 죄를 짓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러면 죽어서 천국에 못 간다고 협박한다.
오늘날 헬조선 목사들과 야훼스트 사제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악마의 편집'을 믿고 따르던 당시 '노예'와 오늘날 '시민'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