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2) (1절에 포함되어 있음)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오늘은 광복 기념주일입니다.
56년 전 우리에게 일제 36년 간의 압박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독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 주일에 성경적인 민족애, 민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합니다.
민족애라고 하는 것은 요즈음 우리들 주변에 일어나는 지나친 민족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민족주의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 잘 압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그런 민족주의가 불러일으킨 전쟁이며, 요즈음 우리 한일 관계에 큰 쟁점이 되는 일본교과서 문제라든지 일본의 정치인들의 우익발언 등을 우려하는 것도 이것이 그들의 잘못된 민족주의의 재현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제일 두려운 단체가 있었는데 그것은 소위 KKK 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서 유색인종들을 테러하는 단체였습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두 번에 걸쳐 연해주에 단기선교 다녀왔습니다만, 그곳의 고려인들도 사실 잘못된 민족주의의 희생자들입니다. 옛날 스탈린 시대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가 소련이 붕괴하자 그곳 민족들이 독립하고 그러면서 민족주의로 흘러서 타민족을 배타함으로 그곳에 살수가 없어서 재산 그대로 놔둔 채 또다시 살길을 찾아 옛날 자기 조상들이 살았던 땅 연해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잘못된 민족주의의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은근히 이런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사람들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미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그 밖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정당하게 요구할 것을 요구하는 일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들어서 그들 전체를 매도하고 무조건 외국사람들을 미워하도록 하는 일은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가는 길입니다.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결코 민족을 위하는 길이 아니며 성경적인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민족만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민족을 사랑하고 전 세계를 사랑하라고 합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요 3:16)는 말씀도 그런 의미입니다.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선교한 것도 그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제까지 이런 민족주의의 벽을 넘어서 온 세계에 퍼져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민족만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향해 나가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민족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자기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멸망당하게 되었을 때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기록한 책에서 지워버릴지라도 자기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까지 했습니다.(출 32:32)
에스더 같은 사람은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면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에 4:16)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는 자기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꾸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눈물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도 파사 제국에서 평안히 살 수 있었지만 자기 민족이 도탄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며 기도하고 금식하다가 결국은 고국의 총독으로 발령을 받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더라도 사도 바울은 비록 자기가 이방인들 곧 다른 민족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한 사명을 받았지만 자기 민족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요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 이름이 생명 책에서 제해 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도 온 세상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지만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시면서 자기 민족을 향한 그의 애정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지나친 민족주의,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흐르지는 말아야 하지만 내가 속한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의 크리스천 사상가로 내촌감삼(우찌무라 간조)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두 개의 J를 위해 산다. 하나는 Jesus이고 다른 하나는 Japan이다'
우찌무라 간조가 얼마나 존경받는 크리스찬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과 자기 민족을 둘 다 사랑했습니다. 그 말을 어떤 분이 고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두 개의 C를 위해 산다. 하나는 Christ이고 다른 하나는 Corea이다' 전에는 Korea를 스펠링 할 때 Corea를 썼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정한 한 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한 민족에 속하여 살아가게 하신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은 바른 신자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자기 민족을 아는 사람이 다른 민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자가 다른 민족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남서울 교회 성도들이 다 민족을 아는 성도들, 민족을 아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만 알고 우리 민족만 사랑하는 성도들이 아니라, 먼저 우리 민족을 알고 그 바탕 위에서 다른 민족을 이해하고 다른 민족도 사랑하는 바른 민족주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민족을 사랑하자고 했는데 누가 우리 민족입니까?
이 세상에는 자기 민족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피가 섞여서 자기 민족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혼동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누가 우리 민족인지 너무나도 잘 압니다.
지금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우리 이웃이 다 한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한 민족입니다.
여러분, 한 민족이 이렇게 같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압니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 곳에서 한 민족이 같이 살다보니 민족의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 살아 본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도 외국에서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 살아 보았는데, 어쩌다가 동양 사람이라도 만나면 혹시 한국 사람 아니냐고 묻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그렇게 좋아한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 살 때,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한국 사람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 같아서 차를 세웠는데 그 사람도 저를 보고 차를 세워서 길에 나와 통성명을 하고 서로 전화번호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나왔습니다. 처음 한국에 나올 때라서 마음이 무척 설레였습니다. 그리운 나라, 그리운 민족을 만나는 고향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공항에 내려 싱글벙글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인사도 안하고, 가게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고 남등쳐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나 사회가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는 민족의식이 없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인구가 모여 경쟁을 하다보니 경쟁상대일 뿐 한 동료이자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그 민족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세워놓은 하나님의 기관인데,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지고 성도와 교회들이 왜 그렇게 이기주의화가 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만 잘되면 되고,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의식들이 팽배되어 있어 이 민족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나라를 책임지는 파수꾼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 교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압박을 받고 있던 때,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때는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교회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독립에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피흘림, 순교, 순국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너무 민족의식이 없습니다. 자기만 살려는 이기주의와 배타주의가 팽배하고 같이 살아나가려는 민족의식이 약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중심이 되어 민족을 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아는 교회, 그래서 나라를 책임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이 누구입니까? 우리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입니다.
또한 우리 옆에서 같이 사는 이웃만이 아니라 민족이 넓게 퍼져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저 북녘 땅에 살고 있는 북한 동포들도 같은 민족입니다.
제가 지난 번 북한을 방문했을 때 묘향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묘향산 밑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국 사절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을 보여주려고 우릴 데려갔습니다. 저희는 얼른 그것을 보고 묘향산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우릴 통제하고 주민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묘향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다 못올라가게 정리한 다음 우리를 올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벌써 묘향산 꼭대기에 올라 가 있던 북한 주민들이 내려오다가 우릴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듯이 우릴 쳐다보다가 저희가 먼저 남쪽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니 우리 손을 붙잡고 반갑다고 하면서 남자든 여자든 간에 다 반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잡은 그들의 손은 우리와 너무 달랐습니다. 거칠고 투박하고 손마디가 굵은 손이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녘 땅에 있는 사람들, 비록 지금 우리들이 다른 정치체제와 이념 속에 있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태지만 역시 이들도 만나면 반가운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북한 사람들도 우리의 민족입니다.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가 싸울 것은 싸워야 하지만 그들도 우리 민족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들, 또 이번에 우리 단기 선교팀이 방문했던 러시아의 고려인들도 우리의 민족입니다.
특별히 러시아의 고려인들, 그 중에서도 연해주에 정착하려는 고려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민족애를 베풀어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사실 그 땅이 다 우리 조상들의 땅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땅이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곳 통치자들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으며, 또다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입니다.
텔레비전에서 그들이 강제로 끌려갈 때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에 가서 끈질기에 개척을 해서 살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어서 어느 정도 살게 되었을 때, 또 다시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의 민족주의가 일어나니 또 고려인들이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그 곳을 도망쳐 나와 이제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연해주 땅으로 가야겠다고 해서 그곳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제가 2년 전에 그곳에 가보니, 겉모습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합니다. 그러나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다 대학나온 사람들입니다. 과거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제각기 안정된 생활을 하고 나름대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살 곳을 잃어버리고 연해주에 와서 부터는 맨 땅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면서 그들 가운데 나이 많은 분들은 한국말을 알고 있지만 자녀들은 한국말도 잘 못해도 똑같은 대한민국의 한 민족임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우리 민족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들이 그 밖의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도 한 민족으로 생각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교포들은 중국의 조선족이나 러시아의 고려인들보다 생각이 낫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부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그들도 나름대로 외국인으로 사는 서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방문하면 밤잠을 자지 않고 우리의 얘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고국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서울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이들도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가 민족을 사랑하자고 하면 우리 이웃들끼리만 서로 사랑하는 것만 생각하지 쉽지만 이북의 동포들, 중국의 조선족들, 러시아의 고려인들, 세계 각 곳에 퍼져 있는 교포들이 다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모두 사랑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베풀어야 할 우리의 민족애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먼저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성도들이 자기 민족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으며, 에스더가 그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신약의 베드로가 그랬고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교회 역사적으로도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먼저 자기 민족들을 위해서 기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우찌무라 간조가 그랬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그랬습니다. 존 낙스가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거든 내게 죽음을 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그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다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기도한 분들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사랑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생명을 걸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민족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구원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래서 우리가 우리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민족이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힘쓰는 것이 민족복음화가 아닙니까?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87 가정의 선교사님들을 파송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의 민족이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들이 선교를 하는데, 마치 선교만 다 하면 다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는 지상명령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민족을 맡기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웃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민족 복음화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세계 선교만 다 했다고 우리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어려움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들 가운데에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도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 땅에 사는 우리 민족들은 낫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에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민족은 북한 동포들입니다. 그 다음이 고려인입니다. 고려인들을 보면 이북사람들보다는 자유가 있습니다. 이북 사람들은 고려인들이 사는 연해주 땅도 천국이라고 북한을 탈출해서 그곳에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들도 어렵지만 북한 동포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광복기념주일에 민족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북한 동포에게 기울게 됩니다. 이번에 우리 나라에 비가 많이 와서 수재를 당한 사람이 있어서 그들을 위해 정성을 마련했습니다. 그래도 남쪽에는 비가 많이 와도 수로 시설도 되어 있고 산에 나무들도 많은데, 북쪽에는 수로시설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가본 분들은 알지만 산에 나무라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싹 쓸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지금 보도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남쪽에 비가 왔으면 북에도 비가 많이 왔을 텐데 아무도 모르게 매몰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농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말 그 땅은 비가 안오면 가물어 농사를 망치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홍수나서 다 쓸어버리니 어떻게 해야될지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양식이 부족해서 한참 영양이 필요한 아이들이 우유가 모자라 영양결핍에 걸려 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자라나더라도 평생 불구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결국은 우리가 그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북한 동포들을 위해 정성을 모아 그들에게 전달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 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한국말을 하면서 살게 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고 이 민족에 대한 우리의 사명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16년 동안 외국에서 살면서 민족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5년 전 이 남서울 교회의 목사로 부름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얼마 안 있어 미국 시민권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왜 저를 다시 한국으로 부르셨는지 분명히 압니다. 외국에 있으면서 깨달았던 민족애를 가지고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며, 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그러면서 우리 민족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사랑하여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꿈을 가지고 목회하라고 저를 불러 주신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표어를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지향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모여 공동체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제자로 불러주시고 공동체로 묶어주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그것이 일차적으로 우리 민족을 복음화하라는 뜻이 있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비전으로 하나가 되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