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의미 2002-04-13 17:28:54 read : 297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출애굽기 15:22-26 // 2002.04.07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광야의 여행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광야의 40년을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광야 40년의 의미는 그 이상입니다. 빠르면 몇 주간, 길어야 몇 개월이면 통과할 수 있는 거리를 왜 40년 간이나 헤매이게 됐을까요? 물과 양식이 없는 곳, 사람이 생존하지 못할 척박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헤맸을까요? 첫째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들은 광야에서 배웠습니다. 광야에 들어서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장서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앞장서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장서시는 삶이라는 것이지요. 옛날 전쟁은 언제나 왕이 친히 앞장서서 싸우는 법입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기 때문에 왕이 대우를 받고 백성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 교회 지도자, 사회 지도자의 길도 바로 여기 있는 줄 믿습니다. 금년에 선출되는 정직원들은 자기 집만 생각하는 소아병 환자가 한 사람도 없고 모두들 하나님의 교회를 생각하는 영적 거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딤전 3:5).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하였는데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밤에는 구름기둥이 불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 불과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친히 광야 길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고전 10:1-4에 바울 사도가 기록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 믿고 천당갈 때까지의 삶은 의미가 있는 삶입니다. 내게만 아니라 하나님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이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예수 자신이 신령한 생수요 신령한 떡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솟구치는 생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혜사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죽음이 있는 곳이고 악령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그 어떤 위협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광야 생활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사막에 물이 흐르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광야에서 옥토처럼 은혜의 꽃이 핍니다. 하나님의 복이 하늘로부터 임합니다. 샘이 터지고, 양식이 풍족해지고, 찬송이 터져 나오는 승리를 구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고 두고 출애굽 광야의 길이 승리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었음을 기억하였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 육신생활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배웠습니다. 신명기 8:2-4에 모세가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틀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게 바로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물이 없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서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광야는 새들이 살지 못하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바람따라 보내주셨습니다. 신앙생활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생활의 조건이 되어주시는 분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는 나일강이 생명줄입니다. 봄이 되어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우기가 되어 나일강이 범람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흙이 자동적으로 전 농토를 객토시키므로 나일강은 풍요한 식량을 생산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 사람은 해와 달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땅은 천수답입니다. 하늘에서 비가와야 생산할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만 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성도들의 삶을 장악하시고 계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애굽 사람, 세상 사람은 땅에서 분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죄를 지어도 지은 그대로 최후의 심판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의 세상 길에서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칭찬과 징계가 즉각 즉각 옵니다. 하늘과 땅에서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하나님의 복이 아니면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개입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서 쓴 물을 마시고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한 법도를 세웠지요.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26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생존과 환경전체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를 교육하고 징계하시며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낫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쓴 실패의 잔을 마시게 하는가 하면 여러분의 환경인 몸과 땅을 고치시기도 하십니다. 요컨데 세상 사람은 가만히 기다리면 끝장나도록 되어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과 직결되는 삶을 삽니다. 건강과 질병, 성공과 실패,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반드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관되어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어 보세요.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픕니다. 환경과 모든 관계속에 하나님의 매가 임합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각근히 행하면 즉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심령도 고치시고, 육체도 고치시고, 환경도 고치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에서 값비싸게 배운 신앙생활의 진리였습니다.
셋째로, 광야 여행의 절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옛날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명명백백한 문자로써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이 경건이며 의로움인지, 무엇이 성결이며 거룩인지 밝히셨던 것입니다. 십계명의 서문은 "나는 너를 종되었던 애굽 땅에서 끌어낸 여호와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명하시는 것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죄 가운데서 구속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구원얻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된 특권입니다. 전에는 하나님도, 법도 없었는데 이제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소유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사함받고 의롭다 함을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순종할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끄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이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십계명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대단히 윤리적이시며 도덕적인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윤리와 도덕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과 관계없는 윤리라는 것은 기껏해야 모든 인간에게 관계된 규범이나 신용을 위한 규칙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을 보게될 때 모든 윤리규범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윤리는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이기 때문에 계명을 어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계명을 어겨서 죄짓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십계명을 다 못지킨다고 지옥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면 의와 공도로 행하는 자랑스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먼저 받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도 믿는 성도들이 십계명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곧 의와 공도로 세상을 심판하는 분이심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사 약속의 땅에 들이시기 전에 그들로 광야 40년을 여행하게 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은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합니다. 성도의 삶은 거저 괴롭고 답답하고 도피하는 삶이 아닙니다. 지상의 삶은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정복을 위해 진군하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광야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육하실 뿐 아니라 이 어려운 시련의 삶을 통하여 자신을 증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 땅위에 펼치시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로, 신앙생활은 절대 내 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늘 우리 앞서 가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광야의 삶을 완전히 장악하고 계십니다. 신자의 삶은 주께서 개척하신 삶이기 때문에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늘 죄를 회개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신자의 삶은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약속의 삶이기도 한 것입니다. 셋째로,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광야로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광야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앙생활에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광야 40년의 길을 힘있게 걸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