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바치는 노래 2002-04-13 16:39:53 read : 279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사야 62:1-5 // 2002년 04월 07일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친히 세우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이다.
가정과 교회는 사랑의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사랑이 흘러 넘쳐야 한다.
악한 영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와 가정을 쓰러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공격한다.
교회를 예배드리는 장소보다, 사교모임의 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배드리는 것이 귀찮아지도록 만들어 버리기에, 예배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가정을 깨뜨려 버린다.
3, 4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청교도 전통이 있었기에, 타락한 영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존 F 케네디가,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 후, 미국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믿음이 무너지자, 마약과 프리 섹스가 나타나게 되었고, 제멋대로 방종 하는 인생들이 늘어갔다.
부부관계가 깨어지자, 자녀들은 탈선하게 되어, 수많은 잘못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소중한 가정을 지키길 바란다.
4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들을 향하여 "헵시바( :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 있다)"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녀는 시온과 이스라엘이며, 오늘의 교회이기에, 주님께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한다.
또한 가정( )을 비유로 하고 있기에, 그녀에게 바치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카알라일'은, 역사와 문필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신경질이 심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결혼생활 내내, 단 한순간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사랑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의 아내는, 방황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누가 보아도 '토머스 카알라일'은, 좋지 않는 남편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죽은 뒤, 토머스 카알라일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아무도 내 속을 모른다. 단 5분만이라도 좋다. 아니, 1분만이라도 좋다.
아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전할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줄까? 나는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토마스 카알라일이 진작에 사랑을 고백했다면, 과연 그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은 고백되어야 하며,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을 고백하고 계시는가? 사랑은 어떻게 고백되어야 하나요?
1. 열심히 일하신다(1).
주님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위해 일하실 때, 잠잠하거나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신다.
버림받았던 자가, 하나님의 기쁨을 입은 자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신다.
여기서 자기의 사랑스런 아내를 위하여, 묵묵히 일하는, 성실한 남편의 모습이 느껴진다.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렇다.
시편기자는 성도를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표현했다(시121:4, 8).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다.
유태인들이 일하지 않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시다가 지탄받았다.
그때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 :17)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열심히 사랑하신다. 얼마나 열심히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의 열심은, 죄 많은 인생들에게,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왕하19:31)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한 부자가 있었다. 그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눅15:11-32).
그 중에 작은 아들은 아버지 살아 계신데, 유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외국으로 갔다.
그곳에 가서 창기와 더불어 허랑방탕하다가, 얼마 안 가서 빈털터리가 되어, 거지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형편없는 모습으로, 아들이 돌아온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냄새나는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목욕시키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렸다.
이런 행동은, 불쌍한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올 때,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신다(1).
시온의 공의가 빛날 때까지,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나도록, 쉬지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주님이시다.
2. 칭찬하시고 격려하신다(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보 잘 것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하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격려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욥을 사단 앞에서 자랑하시고, 크게 칭찬하셨다(욥1:8; 2:3).
하나님은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칭찬과 격려는 차이점이 있다.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격려하신다.
칭찬은 성공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면, 격려는 오히려 실패했을 때 주어진다.
어느 시골에서 한 아이가,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의 어머니가 처녀 때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누굴까 수근거렸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그는,
학교에서도 왕따가 되어, 너무 외롭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마을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그 목사님의 설교가 참 은혜롭다는 소문이 나자, 그 아이는 설교를 듣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여러 번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주일 아침 교회를 찾아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배 시간이 시작된 뒤, 조용히 들어가 뒷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말씀이 잘 들려오지 않았지만, 한번 두 번 나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았다.
주일만 되면 발길이 교회로 끌렸다. 아이는 점차 하나님 아버지께,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늦게 가서 뒷자리에 앉았다가,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집에 돌아오곤 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과는 달리 예배를 마치고 조금 늦게 어른들 사이에 숨어 예배당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넌 누구냐? 네 아버지는 어느 분이시지?"
돌아보니 거기 목사님이, 사랑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서 계셨다.
목사님은 곧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네 얼굴을 보니, 누굴 닮았는지 알겠구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성령님은 소년을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그의 이름은 벤 후퍼인데, 미국 테네시 주에서 주지사로 두 번이나 당선되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회와 교회에 아름다운 삶의 본을 남겼다.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했다.
"주일 예배 후, 목사님이 제게 하신 그 한마디가, 저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격려하는 자가 되기 바란다. 성도는 어떻게 격려할 수 있나요?
격려 중에 가장 힘있는 격려는, 상대방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기도하는 일이다.
특별히 어머니가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하는 모습은, 가장 큰 격려가 된다.
저도 잘못된 길로 갈 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저를 바른 길로 가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마음에, 믿음으로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부모가 되자.
3. 뜨겁게 사랑하신다(5).
4절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버리운 자처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신부처럼 면류관처럼, 아름답고 존귀하게 여기신다.
헵시바는 원래 히스기야 왕의 왕비의 이름이다(왕하21:1).
이렇게 존귀하고, 아름답고, 사랑 받는 왕비처럼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한다고 하신다.
청년이 뜨겁게 사랑하지, 노인들이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뜨겁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여 준다.
성도의 가장 큰 행복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어두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악한 마귀도 이길 수 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실험하였다.
병원내에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 강아지가 있었다.
누구나 이 강아지를 귀여워했고, 가까이 오면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주었다.
그런데 한 의사가, 병원 내의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여, 일주일 동안 이 강아지에게 쏟던 사랑의 표현을 중단하도록 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사람들은,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반가이 다가와도 모른척했다.
강아지는 더 반갑게 접근했지만, 귀찮다는 듯이 발길로 툭 차버리며 애정을 끊어버렸다.
일주일 후에 이 강아지의 혈액을 검사했을 때,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다.
강아지의 혈액이 탁하고 아드레날린이 증가하여, 질병 상태가 되었다.
그 후, 의사는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사랑해 주라'고 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랑해 주고, 일주일 후 강아지의 혈액을 다시 검사했다.
그 결과 아드레날린의 양이 현저하게 줄고, 질병도 떠나고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기 바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연애하던 시절 어떻게 사랑했는가?
매일 전화하고 만나고 선물하고, 정말 쏟아 붓듯 사랑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말씀이다.
총각이 처녀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하여, 애타게 두드리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애타게,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계3:20).
그렇다면 마음의 문을 여셨나요? 신랑 되신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여셨나요?
문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고, 그 넓은 품에 안겨야 한다.
그러면 주님은 약속대로, 우리의 삶을 진정 가치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다.
인간적으로 볼 때, 지극히 보잘 것 없을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헵시바다.
주님께서는 마치 왕자님이 시골 처녀에게 반한 것처럼, 우리를 향해 매우 열렬하게 연애하신다.
또한 우리는 쁄라( : 결혼한 여인, 여주인)이다.
과거가 있는 여인을 무조건 받아주시고, 깊은 애정으로 사랑하시는, 매우 너그러운 남편과 같이,
주님은 우리를 무조건 받아주시고,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그런데 이 사랑을 외면하겠는가? 언제까지 모른 체하겠는가?
이제 주님의 사랑을, 겸손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랑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늘 아름답고 신실한 사랑으로 가꾸어 가시기 바란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시면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가정과 교회에 적용해 보자, 우리도 자주, 우리 자녀들을 포옹해주자.
부모와 자녀 사이만 아니라, 배우자간에도 자주 사랑을 표현해 안아 주라.
교회 안에서도,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주 거룩하다고 하는 청교도들조차도, 진정한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심을 보여주면서,
성도들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하심을 보여준다.
우리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나?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서,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었던 여인, 마리아를 생각해 보라(요12장).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다.
유대 여인들은 결혼을 위하여, 혼숫감으로 향유를 예비한다.
그런데 그 혼숫감으로 준비했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다 쏟아 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는데, "긴 머리는 여자의 영광이다"(고전11:15)고 했다.
이렇게 엄청난 헌신을 마리아는 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오빠 나사로를 죽음에서 건져주셨고, 그 여인의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하셨다.
마리아는 은혜를 충만히 받았기에, 300 데나리온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너무나 아깝지만, 마리아가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바치는 시간, 봉사, 예물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비결이다.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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