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무기로 삼으라 2002-05-31 18:43:01 read : 267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레미야 33:1-9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역경과 고난, 시기, 그리고 유혹과 시험 앞에서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저를 통해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여러분들의 삶에서 역경과 고난과 유혹, 그리고 시험을 이기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사실 지난 한 달은 목회자인 저에게도 참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오히려 저에게 은혜를 주시고, 저의 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달 동안 어떠했습니까? 말씀을 들은 후에 승리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목회자로써는 성도들이 선포된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을 보는 것만큼 보람된 것이 없습니다.
이번 한 달은 "기도"에 관련된 말씀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기도를 무기로 삼아라!"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상황>
B.C. 588년 유다는 바벨론의 3차 침입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포위를 당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을 물리치려고 왕궁과 가옥까지 헐어 성벽을 쌓는 등 갖은 고생과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다는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유다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더불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B.C. 587년 남 유다의 예레미야 선지자가 왕궁의 감옥인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으로 "위로의 책(The Book of Conso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 연유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유다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은 사람들의 귀에 언짢게 들렸습니다. 더욱이 유다를 돕기 위해서 애굽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벨론은 애굽과 싸우러 가는데, 이런 상황을 보니, 유다가 망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 예언자라고 매도해 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레미야는 왕과 자기를 미워하는 여러 거짓 선지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왕궁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이 상황이 억울한 상황이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비록 절망 가운데 있지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오직 부르짖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확인시키셨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면서, 오직 당신만이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셨습니다. 2절 말씀을 표준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땅을 지으신 주님, 그것을 빚어서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이름이 '주'이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의미가 좀더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천지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둔 후에는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신 분이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은 비록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만, 너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인 나 여호와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누구를 향한 약속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한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약속입니다. 오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절망하고 낙심하며, 근심 가운데 빠져 있는 성도를 향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왜 부르짖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기도가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고난, 절망과 슬픔, 근심과 걱정- 이런 것들이 몰려 올 때, 기도라는 무기를 통해서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이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무기이자 방패입니다. 기도의 무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일생 일대 무기는 기도뿐이다"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그렇다면, 기도로 무기를 삼으면 어떻게 됩니까?
1)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6절 말씀을 표준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나 보아라. 내가 이 도성을 치료하여 낫게 하겠고, 그 주님을 고쳐 주고, 그들이 평화와 참된 안전을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겠다."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망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을 모아 예루살렘을 지키려고 했지만, 이미 하나님은 그들을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도만 한다면,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한다면, 온전한 회복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치료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도성을 치료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주민을 고쳐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화와 참된 안전을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방법을 보니까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치료가 점점 구체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먼저는 도성을 치료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곳에 사는 주민을 고치고, 마지막으로는 평화와 안전을 허락하십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도성이란 무엇입니까? 삶의 터전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입니다. 그럼으로 그 환경을 치료한다는 것은 우상숭배가 만연된 환경을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악하면,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믿음을 지켜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라는 학자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The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에서 인간은 도덕적이기를 원하더라도 사회구조가 비도덕적이라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사람의 환경, 즉 삶의 터전을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치료란 히브리어로 '아루카'라는 말인데,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그럼으로, 곪은 상처를 깨끗하게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민을 고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성이 자연적인 삶의 환경이라면, 주민은 대인관계를 말합니다. 개개인 한 사람이 바로 서야 합니다. 바로 이럴 때, 개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야 말로 온전한 회복 아닙니까? 기도의 무기를 통해서 온전한 회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죄가 사하여 집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상숭배와 불순종, 그리고 범죄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를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 그 모든 죄악을 용서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십니다.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믿고 마실만한 물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정수기를 이용해서 물을 마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정수기를 거친다고 해도 사용하다 보면, 제대로 정수가 되지 않고 여전히 이물질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실 때에는 그 흔적조차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입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회개할 것이 있으시지요? 그렇다면,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세상 일에 대해서 근심한 것을 회개하십시오. 세상 일로 근심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고린도 후서 7장 10절 말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세상 일로 분주하고 세상 일로 근심하며 사십니까? 회개를 통해 용서함 받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복의 근원이 됩니다.
기도하면 복의 근원이 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이 말씀을 듣고, 뭐가 생각나십니까?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성도 여러분, 사실 유다 백성이 지금 복 받을 것을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더 이상 재기를 꿈꿀 수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엄청난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생각나시지요?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10)." 야베스는 그의 모친이 수고롭게 난 아들이었습니다. 숱한 고생길을 걸어야만 하는 인생이 될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지경을 넓혀주셨습니다. 환난을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근심이 없게 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상황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를 무기로 삼고 나가세요. 그리하면, 온전한 회복을 이루고, 죄사함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 때, 기도가 무기가 될 수 있습니까?
1) 기도의 주도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도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도의 주도권이란 무엇입니까? 기도 응답에 대한 모든 권한을 말합니다. 그럼으로 기도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답이 '그래(Yes)'이든 '아니다(No)'이든 아니면, '기다려라(wait)'이든 그 응답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문제를 말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그가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만 말씀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리아는 전적으로 예수님께 문제를 맡습니다. 주도권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그럼으로 기도를 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참된 목적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일의 성사를 놓고 그것이 되든 안 되든 그 일의 성사여부를 내가 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제를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주님 앞에 내어 놓은 문제가 성령의 역사로 주님께 상달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확신과 신뢰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 믿음에 굳게 서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누구십니까?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나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약속한 상속자는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하나님이 큰 상급이 되신다고 하시는데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아들을 안 주실 것이라면, 저의 종인 엘리에셀로 상속자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상속자를 언제 얻었습니까? 100세입니다. 몇 세라구요? 100세.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20년 동안 약속을 믿고 기도한 셈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간절히 기도했고, 그런 끈질긴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만 끈질기게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습니까?
느헤미야는 간절한 기도로 성벽 재건을 이루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한 결과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벗은 어떻습니까? 밤늦게 친구가 왔습니다. 먹을 것을 대접해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친구에게 가서 먹을 것을 강청해서 먹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强請)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이뿐입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의 비유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끈질김과 강청함으로 응답받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강청함을 인하여서라도 응답해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만큼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몇 번 부르짖다 쉽게 지쳐 중도포기하지는 않습니까?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더라도 처음에는 나오는 듯싶더니 조금 지나다보면, 점점 줄어듭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끈기 있게 기도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장 볼 때까지 기도하는 근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사 당장은 응답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기도 응답의 관건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주시겠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주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강청함으로써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염려를 버려야 합니다
한 가지 물어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있을까요? 아니면, 모르실까요?"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옷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자동차도 필요하고 때로는 병으로부터 고침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염려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그분에게 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을 다 잘 아시는 말씀이시지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아뢴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곧 더 이상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에게 문제가 없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평강이 주어집니다. 평강은 문제가 해결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은 나의 문제를 주님의 손에 맡겼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기도를 하면서도 염려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바로 자신 때문에, 곧 자신이 깨끗하기 때문에 자신이 구하는 바를 주님이 응답하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비록 주님이 응답하신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우리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요, 그분의 거룩한 보혈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악과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모든 짐을 아무런 염려없이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4) 목적을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까? 혹시나,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도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기도의 목적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 있던 앉은뱅이가 구걸할 때,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 어떻게 고쳐주었습니까? 앉은뱅이 앞에서 주여 삼창하고 통성기도한 후에 고쳐주었습니까? 아니지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성도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이 누구를 드러냈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낸 것 아닙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금과 은을 앉은뱅이에게 주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의 목적은 자신을 드러내는데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주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맞습니까? 아니면, "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질지어다"가 맞습니까? 말할 필요없이 "주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주님이 세우신 목적을 위해 쓰기를 원하십니다. 오직 주님 자신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세상 일에 너무나 바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데 너무 분주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차를 사고 싶어서 "주님, 새 차를 살수 있도로 도와 주세요. 차 값이 얼마인 줄 아시죠? 그리고 주님, 저는 집도 필요해요.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성도 여러분, 언제까지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하시렵니까? 세상 것보다 우리 주님을 더 사랑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결 론>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도는 관계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종된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생활에 있어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럼으로, 종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의 가장 큰 소망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것 아닙니까? 주도권을 바로 잡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그럴 때, 암울했던 상황에 처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들려진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해주시고, 낫게 해주시고,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춘천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은 간절히 부르짖어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체험하는 산 신앙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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