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2:25~30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함이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신자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구경 삼아 오기도 하고, 총각들은 착실한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오기도 하며 심지어 장사하려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는 접촉점이 되기도 합니다.
또 교회 안에는 성령으로 거듭난 참신자도 있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진실한 신자가 있는가 하면 교회 오면 신자같으나 세상에 나가면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형식적인 신자도 있습니다. 더구나 세례교인으로써 제직으로써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범적인 신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어서 못하는 사람과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할 수 있는데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귀한 사람들입니다. 귀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존귀히 여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충성하는 일군신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숨까지 바쳐 교회를 지키고 충성하는 일군신자야말로 존귀히 여겨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어떤 교회는 이런 신자가 한 명도 없다 보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교역자 세미나를 할 때마다, 교회 안에 일군신자 다섯 가정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수영로 교회가 단시일 안에 이렇게 빨리 부흥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실한 일군 신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5년 12월,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얻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오라고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날로부터 철야기도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단 하루도 교회를 비운 적이 없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 아낌없이 드리려고 마음먹은 충성된 일군들을 주님이 보내주셨습니다. 이분들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고 복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축복 받은 교회입니다.
이런 일군신자 한 명이 일군신자가 되지 못한 천명보다 훌륭합니다. 부산에도 많은 교회가 있지만, 수백 수천이 모여도 힘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장로 집사 권사는 세웠지만 일군신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군 신자 한 사람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일군신자 한 사람을 세우면 그 사람이 모델이 되어 본 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한 알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일군신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군신자가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복음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전파되고 교회가 부흥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사람이 존귀히 여기는 일군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교회가 부흥되어 신자의 숫자가 몇 만 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일곱 집사를 세워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감당하게 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사도행전 6: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일군신자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에바브로디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를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함이니 이러므로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1. 나의 형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형제자매란 같은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입니다.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국가와 민족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형제요 자매입니다.
2. 수고하는 자
이 말은 동역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일 대예배를 드릴 때, 저는 설교하고, 부목사님은 사회보고, 어떤 분은 반주하고, 또 어떤 분은 성가대 지휘를 하고, 성가대 대원으로 성가를 부르고, 안내위원으로 헌금위원으로 외부에서 차량안내로... 이 예배를 위해 다양한 팀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해 주므로써 예배가 순조롭게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동역자들입니다.
특별히 교역자들이 볼 때 소중한 동역자는 조장, 구역장, 권찰들입니다. 이들은 교역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방하고 출결석을 체크하고 불편한데는 없는지 살핍니다. 이분들도 교역자와 같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기 바랍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교회를 시무할 때,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신자 명단을 적어오고, 누가 몸이 불편한지 혹은 몸이 아파서 입원했는지 알아보고 집에 있을 때 그분들의 쾌유를 위해 늘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던 날 스펄젼 목사님께서 이 할머니야말로 나의 가장 훌륭한 동역자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도우며 기도를 해주시든 심방을 해주시든 어떤 일을 맡아서 하더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종과 동역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똑같이 상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선교사가 되지 않았어도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다면 선교사의 상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비록 몸은 이곳에 있지만 동역자로서 얼마든지 선교사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3. 함께 군사된 자
군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바쳐 일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고 함께 수고하는 군사입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주님을 앞세우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주님 하시던 일을 그대로 행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4. 나의 쓸 것을 돕는 자
사도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도 바울을 생각하며 기도해주고 물질로 도와준 교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달랐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아주 특별한 교회로 루디아라는 여성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시무하고 있지 않았지만, 사도 바울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늘 돕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위해 특별헌금을 하고 에바브로디도는 헌금을 모아 사도 바울이 있는 감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해주며 섬겼습니다. 이와같이 에바브로디도는 만사를 제쳐놓고 감옥에 갇혀있는 주의 종을 돌보아주는 참으로 보배로운 일군이었습니다. 아마 천국에서 큰 면류관을 받았을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도 26년 동안 놀라운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세계 교회 앞에 자랑거리가 되는 그런 성도들이 이 자리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높이고 자랑하지 않으려 해서 그렇지, 대단히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책을 쓰게 되면 그분들을 다 쓸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개척 초기다 보니 헌금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써야 할 곳이 생겨 간혹 경상비가 모자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모자라는 돈만큼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무명으로 강대상에 올라오는 헌금이 있었습니다. 모자랄듯하면 또 채워지는 그런 역사가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더구나 추석 명절이 다가오지만 개척교회가 무슨 여유가 있어서 어려운 성도들을 다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때에도 살짝 저를 찾아와 이번 추석 명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가져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교회의 이름으로 하는 이 일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교회를 섬기는지 가만히 보면 그 분의 어머니가 훌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권사님은 자녀들을 볼 때마다 주의 종들 잘 섬겨라 그래야 복 받는다고 귀가 아프도록 얘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이 모두 교회의 일군으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보배로운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을 위해서 그의 곁에 머무르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며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가 자신의 몸이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할 정도로 사도 바울을 위해 충성하며 섬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위해 온 교인이 그에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합심으로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을 위해 살아왔던 그가 병이 든 것을 알고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으며,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리어 걱정합니다.
여기에서 저와 여러분은 사랑이 많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 수영로 교회도 이와같은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진정으로 내 몸이 아픈 것이 걱정이 아니라 나 때문에 걱정하는 교회가 걱정이 되는 에바브로디도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십시오!
온 교회가 기도한 대로 기도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에 사도 바울을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속히 보내 건강하게 회복된 그의 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며 이런 부탁을 합니다. 환영하라 그리고 존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대대적으로 환영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어도 빌립보 교인들은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병들 때가 있습니다. 병이라는 것이 꼭 죄가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눈물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이나 수명을 연장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건강한 사람도 죽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도 엘리야 선지자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고 얼마나 능력이 많이 나타났습니까? 그러나 몸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었을 때, 엘리사의 뼈에 다른 사람의 뼈가 닿으니까 그 사람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죽었습니다. 이는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도 삼층천에 올라가고, 죽은지 14년 된 사람을 만났으며, 큰 기적이 나타나고 말로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육체의 가시가 있어 세 번이나 병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나 낫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자고 할까봐 일부러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건강하다고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병든 사람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도 주의 종도 얼마든지 병들 수 있습니다. 사단의 공격 중의 하나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이 아픈 것도 보통 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럴 때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껏 주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언제나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군신자들은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교회가 계속적으로 부흥되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제직 여러분은 물론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들도 일군 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제직들이 헌신을 다짐하는 이 시간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일군신자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부산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구원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마다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건강도 주시기 원합니다. 물질의 복도 주시기 원합니다. 마음껏 주를 위해 바치며 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