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8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누구를 위해 닭은 울었나?
    2002-06-07 18:59:27   read : 259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3월 18일
    010318.ram(LOAD:71)



    사무엘 하 12:11~15
    주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 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 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께서, 우리아의 아내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치시니, 그 아이가 몹시 앓았다.

    사도행전 3:13~16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 주었고, 빌라도가 그를 놓아 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 힘입어서 된 것이니, 예수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8:15~18 /25~27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게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지요?" 하고 말하니 베드로는 "나는 아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날이 추워서 종들과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도 그 제자 가운데 하나지요?"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부인하여 말하기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하였다. 베드로에게 귀를 잘렸던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하나가 베드로에게 "당신이 동산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하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는 닭이 울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닭이 우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 말 중에 아주 부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죠. 우리가 무심코 내뱉게 되는 그 말은 남성 사회의 여성 박해, 남성 우위의 한 표본처럼 되었습니다. 제가 어느 모임에 가서 이런 우스개 말을 들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합니다. 그럼 수탉이 울면 어떻게 됩니까. 수탉이 울면 암탉이 죽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배신한 그 밤에 닭이 울었습니다.
    닭의 울음을 이야기할 적에 우리는 닭이 "운다"고 말합니다. 개가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는 개가 "짖는다"고 합니다. 야수인 사자가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는 사자가 "으르렁거린다"라고 표현합니다. 어느 나라 언어도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만약에 베드로의 배신과 관련해서 베드로의 역사를 말해주는 닭의 소리가 중요하다고 하면, 닭이 운다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닭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서로 말을 주고받습니다. 개도 개끼리 말을 합니다. 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 똑같은 언어가 없다고, 우리와 똑같은 문자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의사를 소통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를 들어 참새들의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태양이 뜰 때 참새떼가 전신주에 가득 앉아서, 우리보고 일어나라고 지저귑니다. 새의 지저귐을 보고 우리는 "새들의 합창"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런 동물들에게도 편협하지 않고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베드로가 들었던 닭의 울음은 단순히 울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수난과 그 배신의 심각한 장면에서 아마도 닭은 울음으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닭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여러 가지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닭을 매우 좋은 상징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는 천주교회를 가면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고, 개신교회에 가면 십자가 대신에 닭의 모양이 있습니다. 두 교회가 쉽게 구분이 갑니다. 개신교회 지붕에 닭을 세운 것은 아마도 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부인을 직시했던 닭의 울음을 상기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부인한 후 닭이 울었습니다. 세 번 부인한 뒤에 닭이 세 번 울었습니다.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광우병 열풍! 미친 병에 걸린 소들이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서 지금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이 소들의 울음으로 토해내는 외침을 들어 보셨습니까? "누가 만든 질병인데 우리가 몰살당해야 합니까?" 인간이 만든 복제양 '돌리'도 전세계를 풍미하는 구제역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돌리 복제양도 구제역에 걸렸기 때문에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만들어진 모든 동물이 구제역에 걸려 죽는 판에 사람이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돌리야 어련하겠습니까?

    세계 산소 공급량의 5분의 1을 담당하는 아마존 유역의 산림이 급격히 황폐해져 갑니다. 마구 잘라내고, 마구 파헤칩니다. 커다란 황무지들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지구의 허파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소리치는 함성 들리십니까? 하염없는 울음소리가 들리십니까? 수도권 전역에 골프장을 만든다고 산을 깎아냅니다. 산허리가 잘립니다. 산의 맥도 끊깁니다. 나무도 잘려집니다. 파헤쳐집니다. 우리 사랑하는 산들의 아우성을 들으십니까?

    예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절규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이 지금 예수를 버립니다. 버림받은 예수, 그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외칩니다. 하나님이 버리면 인간 예수는 끝장이 납니다. 하나님이 버리면 인간의 역사를 통째로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 복음을 전했던 예수의 역사는 폭발하고 맙니다. "폭발"을 영어로는 explosion이라고 합니다. ex-plosion, 터지긴 터지는데 밖을 향해서 터집니다. 하나님이 버리면 인간은 밖을 향해서 터져 산화되고 맙니다.

    그러나 밖을 향해서 터지기 전에 속에서 먼저 터집니다.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밖으로 산화하기 전에,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이 이미 예수의 속을 다 헤집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도 뜻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되면 속이 상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못 견디게 속이 쓰립니다. 믿었던 자식으로부터 배반을 당한 부모의 속은 찢어집니다. 속이 상하고 쓰리고 찢어지고 이것은 바깥으로 터져 나오기 이전의 내적 폭발입니다. 외적 폭발을 ex-plosion이라고 한다면 내적 폭발은 im-plosion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밖으로 터지기 전에 속에서 터집니다.

    하녀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부인입니다. 닭이 웁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야속한 베드로여, 그대의 부인 때문에 난 정말 속이 상합니다. 베드로의 칼에 귀를 잘렸던 사람의 친척이자 대제사장의 하인인 사람이 베드로에게 다그칩니다. "나는 당신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이 예수와 함께 있었던 것을 보았어요. 거기 있었죠?" 베드로의 답변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알지 못합니다." 두 번째 닭이 웁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 "당신은 비겁합니다. 나는 속이 Tm립니다." 세 번째 사람이 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한패죠? 당신 말씨를 보니 그렇지 않습니까?" 베드로의 답입니다. "맹세코 나는 그런 사람 알지 못합니다." 바로 그때 닭이 웁니다. 아니 닭이 말합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배반자요, 당신은! 당신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아니 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그 닭은 매 맞고 조롱 당하는 예수를 향해서 말합니다. 울음으로 말합니다. "예수님 지금 속이 터지고 있지요? 눈 앞에서 베드로가 이렇게 부인을 하니 어찌 속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속이 터져 화병이 되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산화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그것도 반석이라고 이름 붙였던 제자로부터 버림을 받음으로써 속이 다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계속해서 "결백"을 입증하려고 시도합니다.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라는 사람 모릅니다. 나는 결단코 이야기하건대 그런 사람 알지도 못합니다. 요즘 말로 베드로는 알리바이를 세우려고 애씁니다. 모든 생각이 거기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알리바이 입증 시도는 실패합니다. 실패한 후 닭이 선연히 울었습니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들어 밖으로 나가서 슬피 울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서 말씀의 기록입니다.

    예수는, 오늘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최고 경영자" 예수는 인간 경영에 실패했습니다. 속이 찢어집니다.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시렵니까?" "나는 못 가겠습니다." "그분을 아십니까?" "난 모릅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부인, 배신을 뒤따릅니다. 그 계속되는 부인의 끝에 지금 닭이 또 웁니다.

    이렇게 도덕이 타락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권력의 야욕 때문에, 불의한 파당경쟁 때문에, 증폭된 지역감정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구도 때문에 누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까? 그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소서. 저희가 잘못했나이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인간성이 마멸되면, "차라리 예수의 제자가 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하는 정도가 되면, 닭이 또 다시 웁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는 오늘도 속이 찢어집니다. 오늘도 속이 터져 나갑니다. 예수의 내적 폭발이 오늘 수난절에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는 다시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습니까? 이 수난절에 예수의 화병이 덧나게 하시겠습니까?

    베드로에 관한 요한복음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사람들 앞에 나왔습니다. 베드로의 당당한 음성입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시키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러나 그대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예수 대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오히려 딴청을 했지요. 생명의 근원 되시는 주님을 당신들은 죽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회개하고 저처럼 용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늘 사람들 앞에 나와 섰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자기 몸을 속죄의 제물로 주신 이후로, 짐승을 잡아서 피를 드리던 이스라엘의 제사는 종결되었습니다. 다시는 피로 드리는 제사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하나로 족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오신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다음에 이제는 닭 울음을 통한 경고는 끝났습니다. 닭은 다시는 신앙의 배신을 향해 울지 않습니다. 닭 대신에 우는 이가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닭의 울음은 경종이 되지만, 성령의 울음은 우리의 기초를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내면 세계를 다 뒤집어놓습니다. 우리의 삶을 뿌리채 흔들어서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닭은 베드로가 부인한 후에 울었지만, 성령은 우리가 부인하기 전부터 우리를 위해 웁니다. 부인한 후에도 돌이키기 위해 웁니다. 성령의 눈물에 인간의 내면이 들끓게 됩니다. 인간의 외부 세계도 폭발시킵니다. 안으로부터의 폭발, 밖으로의 폭발, 이 폭발이 우리가 오늘 닭에 빗대어보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을 받읍시다.

    영성이라는 게 뭡니까? 자꾸 영성, 영성 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영성은 이런 것입니다. 다시는 닭은 울지 않는다. 대신 성령이 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영성의 제1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성령이 우리한테 오시면 우리는 완전히 내부로부터 폭발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이 뒤집어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제2단계입니다. 인간의 뒤바뀜 없이 어떻게 세계가 뒤바뀝니까? 사람의 근본이 제대로 서지 않은 채 어떻게 우리의 사회가 제대로 섭니까? 성령의 닭이 울면 내면만 아니라 외부의 세계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성령은 투명하게 역사합니다. 이 역사를 오늘 우리는 경험해야 합니다.

    구약성서 말씀에 다윗은 자기 부하의 아내를 겁탈했고, 부하를 죽인 뒤 그 아내를 빼앗고 왕의 권한으로 못된 짓을 다했습니다. 나단이 야웨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합니다. "너는 밤중에 몰래 이런 일을 행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네 아내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가까운 사람으로 하여금 겁탈하게 하겠다. 회개하라." 다윗이 버티다가 마지막에 회개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내 속을 완전히 폭파시켜 주옵소서. 내가 통치하는 이 나라가 완전히 뒤바뀌게 하옵소서. 주의 영이 임하셔서 저와 이 나라를 구해 주옵소서." 나단은 그 말을 듣고 돌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황망한 부인을 향하여, 예수의 찢어진 가슴을 향하여 울었던 그 닭의 울음소리는 오늘 우리를 향한 성령의 눈물 젖은 간구와 탄식 가운데에서 다시 들려옵니다. 베드로가 부인했던 예수, 그 예수가 오늘 성령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한테 오십니다. 그 분이 오시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보라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

    인간 해방의 꿈, 세계 구원의 소망, 구원을 향한 우리의 희망이 십자가에서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러나 버림받아 죽은 자의 그 십자가에서 부활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수난절에 닭 울음소리를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우시는 성령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를 듣는 때가 바로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입니다.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를 듣고 통곡했듯이, 그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동안에는 아직 우리에게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성령이 이 절기에 우리의 영혼의 귀를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교회
    용서하라- 잊지말라
    악마와 싸우려면
    향기로운 제단
    눈뜬 소경
    고난의 혼을 제거하라
    베델의 감격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오염된 성전은 허물라
    보물은 값지게 쓰라
    빛의 열매
    일용할 양식
    항존 하시는 하나님
    방언의 예언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