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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공동체
    2002-06-06 13:45:52   read : 2424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12:12-13

    2002. 1. 6.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2002년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그 첫 주일입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2년도 목회를 위한 표어는 ‘함께 어우러가는 교회’입니다. 지난 날 가졌던 모든 분열과 갈등 그리고 아픔들이 외적으로는 치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좀더 내적인 치료를 통해 함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어갈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교회에서 함께 어우러짐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먼저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이루어질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 자존심이 아주 쎈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그의 직계 자손들인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타협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헬라인들은 자신들만이 가장 앞서가는 문화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를 받아 유명한 서사시인 호머가 헬라문화로 창출해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문화를 지중해 주변 대부분의 지역에 전파했고 또한 후대 로마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면에서 헬라인들은 자신들만이 문화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깔보았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 민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지역적인 갈등으로 인해 서로 깊은 골이 파져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주인과 종 사이의 연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로마제국에서 주인은 자유인이요 종은 노예입니다. 심한 경우 주인은 종의 생사 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자기의 종을 데리고 함께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종들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 주인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그들이 하나가 되기에는 많은 장벽이 높았습니다. 그 둘 사이에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차별을 폐지하고 하나가 될 것을 사도 바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만나기 거북해 할 정도로 서로의 자존심이 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하나님이 자기만을 더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서로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계층으로 인해 서로 상종하기 힘든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 번은 제가 미국에서 우리 한국이민 교회를 맡아 섬길 때의 일입니다. 그 교회의 중직자 한 분은 가끔 이러한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저런 사람과 상종도 하지 않았는데,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내가 참아야 하니 참으로 힘들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멋모르고 잘난 척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중직자도 문제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정말로 교회 안에서도 서로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꼭 이루어져야 하는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은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읽은 말씀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은 바로 서로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자신의 자리를 절대로 포기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서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될 때 가능해 집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있을 때 저의 학생으로부터 귀한 목회경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전도사로서 안동 지역의 어느 작은 시골교회에서 전임전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25년 정도의 역사에 교역자가 스물한 번 바뀔 정도로 힘든 교회였습니다. 그러한 교회에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하는 전도사가 왔으니 얼마나 견디나 하고 보는 눈초리는 당연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목회를 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두 장로님이 서로 의견을 맞추지 않는다는데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자세히 알고 보니 마을의 일로 인해 이 두 분이 서로 이해관계에 있어 금이 간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도 그러한 관계가 연장되어 도저히 당회에서 의견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는 기도하면서 화해시킬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루는 좋은 생각을 성령께서 주셨습니다. 마침 그때 그 교회의 집사 한 분이 인천의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병문안을 함께 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병문안 할 것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사람의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안동에서 청량리로 가는 기차여행과 청량리에서 인천까지 가는 전철 여행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여행 가운데 두 분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두 사람이 점점 눈을 마주치고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고 또한 크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후 교회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부드러워졌는지 모르겠다고 간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성령이 역사하실 때 금이 간 관계 속으로 끈끈한 연결점이 생겨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대화가 서로 안되는 사람들은 아직 성령 안에서 신령한 은혜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자기의 의견만을 몰아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역시 성령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몸에는 여러 부분들 즉 지체들이 있지만 서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적 집합체입니다. 이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면서도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잊어버릴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비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신경은 머리를 중심으로 우리 몸 전체를 서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의 뇌가 명령하는 것이 몸 전체에 전달이 되고 몸 전체에서 느끼는 자극이 뇌에 전달됩니다. 그래서 서로 유기적인 반응으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바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행하는 몸의 각 지체입니다.

    몸은 서로 경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는 서로 에너지가 흐르게 하는 어떤 길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파악을 잘하여 동양의학에서는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몸의 신경과 경락이 잘 모여서 서로 연락하고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손, 발, 그리고 귀를 제시합니다. 손에는 온몸과 연결되는 신경들이 있어서 머리가 아플 때도 손의 해당부분에 침을 놓습니다. 또한 발에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신경들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뇌졸증이 일어났을 때 30분 이내 발의 해당되는 부분에 부항을 뜨면 응급조치로 소생시킬 수 있다고도 합니다. 또한 귀에도 그러한 신경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귀에다 구멍을 뚫어 귀걸이를 다는 것조차 금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어느 미국 친구들처럼 귓볼에 돌아가면서 줄줄이 구멍을 뚫어 귀걸이를 다는 것을 매우 위험시합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들이 지배하는 몸의 해당부위에 무리를 주고 결국 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각 부분 부분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각 사람들이 맡은 많은 직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입장에서 입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려운 일이 있는 곳이면 찾아가서 도와주는 손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마음의 상처, 우리 마음의 독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해주고 격려하고 권면함으로써 그 사람이 온전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는 독을 제거하는 간의 역할을 하는 직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하여 한 몸을 이룰 때 우리는 한 가족이 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2002년도에는 대구제일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교우가 감당하여야 할 일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지난 해와 같이 올해에도 성경읽기표를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매일 읽어야 할 분량을 거기에 적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직분자들은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일들 가운데 2002년도 한 해 동안은 직분자들이 최소한 감당하여야 할 봉사는 꼭 책임지고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항존직분자들은 기도하는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기도는 장로의 직분을 받은 분들이 감당하고, 주일저녁예배와 수요밤예배는 안수집사와 권사의 직분을 맡은 분들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서리 집사 이상 모든 직분자들이 최소한 봉사하여야 할 부분은 바로 예배시간의 봉사입니다. 안내를 비롯하여 수금을 감당하는 것은 정말 최소한이며 가장 기본적인 봉사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을 때 교회는 제대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무실에서 먼저 엽서를 띄워 알리고, 교구담당 목사님이 전화로 확인하고 또한 담당장로님이 확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10분전에 자리에 모여 기도하며 봉사의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의 이러한 봉사를 바탕으로 내년도 서리 집사 임명에 반영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새해주일을 맞이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각오를 새롭게 하고 하나가 되기 위함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공동체는 함께 나아가는 모임입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생명을 얻으며 함께 목표를 이루는 모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모임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교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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