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삶을 기억하자 2002-06-03 12:09:45 read : 320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신명기 8:1-3 // 2002년 06월 02일
6월은 호국의 달이다. 나라와 조국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누구나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기념관이 있다.
야드 바쉠( , 손과 이름)이라고 하는 기념관이다.
이 기념관은 2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이, 사죄의 대가로 보내준 돈으로 세운, 수난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모두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1번째 방은 1930년 이후 유럽에서 일기 시작한, 반유대주의 유물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2번째 방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유태인 학살 자료들이 있다.
3번째 방은, 희생자들의 이름과 인적사항이 기록 보관되어 있다,
4번째 방은, 나치 정권에 희생당한 150만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관이다.
이곳은 유리로 된 캄캄한 방인데, 수많은 촛불들이 불타고 있다.
어두운 음악과 함께, 희생당한 아이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통로를 지나노라면, 전쟁의 잔인함으로 인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유태인들은 학살 추모관 입구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문구를,
출구에는 "망각은 포로생활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구원의 비밀은 회상이다"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면서, 동시에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했다.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짐하는 그들의 정신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해마다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일본을 규탄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그렇게 일본을 규탄하다가도, 물건 살 때는 "역시 물건은 일제가 최고야!"라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역사를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경험한 뼈아프게 경험,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깨달은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매이면 꿈을 잃고 미래를 보지 못하지만, 과거를 잃어버리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는 일본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백성들은 우리 물건을 애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는지, 반성하지는 않고 규탄만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되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그런 민족적 수난을 당했던가?'를 깊이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의 군국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사죄하기는커녕, "한일합방은 한국에 근대교육을 소개하고, 철도와 항만을 건설해준 유익한 일이었다"며 과거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미화시키고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만이 아니다.
일본 방위백서에 나타나듯이, 군사대국화를 겨냥하여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지도자를 많이 욕한다.
그렇게 정치지도자들이 썩었다고 욕하면서도, 그들이 나오면 또 찍어준다.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실패를 다시 경험해야만 한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때(1),
광야 40년 동안,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2)고 하셨다.
1. 광야는 하나님을 붙드는 장소라(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다.
광야( )는 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황량하고 고독하고 거친 땅이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다. 함께 하신다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위험을 동시에 체험을 하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① 홍해가 막히면,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이적의 역사가 있었고,
② 목마른 기갈의 위험이 있으면,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역사도 일어났고,
③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의 위험이 있을 때, 만나를 공급받는 신비의 체험을 했다.
④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불뱀에 물려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때 하나님은 구원의 상징인 구리뱀을 장대에 세워,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받게 하셨다.
이처럼 광야는 위험과 은혜가 교차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힘있게 살자.
광야생활은 고생은 있지만,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이 떠나지 않는 장소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나'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파스칼은 '고난은 사람을 더욱 깊고, 위대하게 만드는 도구이다'고 하였다.
2.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 하나님의 축복
(1) 애굽에서 건지심
출애굽은 400년 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강한 팔로 구원하고 인도하심이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라고 할 때,
그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고, 더욱 고역을 시켰다.
이런 바로에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렸고, 마지막 열 번째 장자가 죽는 재앙이 애굽 전역을 휩쓸던 밤, 애굽 전역에는 곡성이 진동을 하였다. 바로의 왕으로부터 천한 종들에게까지 장자는 다 죽임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기르는 육축의 새끼들까지 첫 새끼가 모두 죽었다.
이로 인하여 마침 내 바로는 하나님께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다. 그 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상징인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을 면하고 이른 새벽 드디어 애굽을 탈출하게 된다.
이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출애굽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애굽이 있다. 그 애굽이 무엇인가?
우리들의 영과 육을 사로잡아, 종처럼 부리고 억압하고 죄악이 애굽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죄악이 사하여 졌고, 그 죄악에게서 탈출했다.
(2) 험한 길을 통과한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걸어온 길은, 참으로 험한 광야의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는 증거이며, 인도하시는 증거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야의 길과 같아, 도처에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영원한 가나안땅,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내 멋대로 행하여,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갈 수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저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3) 만나로 먹여주심을 기억하라.
장정만 60만 되는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장 염려되는 문제가 의식주 문제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를, 하나님이 모두 해결하여 주셨다.
애굽에서 출발할 때는, 구운 양고기 얼마와 무교병 조금뿐이었다.
많이 있어야 사흘 분의 양식이었지만, 하나님은 저들이 배고플 때 만나를 내려 주셨고, 목마를 때는 물을 주셨고, 또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주셨다.
무려 200만 이상 되는 백성들이, 물이나 음식이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을 지켜오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매일 내리시는 하늘 양식인 만나를 먹음으로써, 생명을 지탱할 수가 있었다.
(4)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음을 기억하라(4).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어떻게 1년 2년도 아닌, 수십 년 간 입은 옷들이 헤어지지를 않고, 발이 부르트지를 않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다(마19:26).
3. 실패를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조상은 애굽의 노예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고, 다시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모세는 12명의 정탐꾼들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 땅이 좋은 곳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열 명은, 그곳 가나안 땅을 악평하여 보고를 하였다.
이 말에 실망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이때 고라 일당은 작당하여 백성을 충동하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은 고라 일당과 그의 가족들을 생매장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살라 죽였다.
또 이 반역의 사건으로 인하여, 단 몇 일이면 가나안 땅에 진입할 수 있던 것을 가지 못하고,
무려 40여 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고통스런 40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고통의 기간동안, 시련의 순간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더욱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그들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훈련 시키셨다.
하나님은 고통과 채찍을 통하여, 온전한 인격과 더욱 굳센 신앙으로 단련시킨다.
따라서 연단 과정에 놓인 성도는,
불평대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깊이 이해하며, 겸손히 그 상황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이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아이다.
우리는 하늘나라 가나안을 소망하고, 광야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가장 경건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맞는 기념일이 '속죄일'이다.
히브리어로 '욤 키푸르'( )라고 하며, 1년에 한번씩 종교적 전통에 따라 기념하고 있다.
욤( )은 날(日)이고, 키푸르( )는 속죄란 뜻으로,
히브리 동사( , 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보상하다, 달래다)에서 나왔다.
그래서 서로 서로 잘못한 것을 보상하고, 용서를 비는 날이 바로 욤 키푸르(속죄일)이다.
우리의 현충일(顯忠日)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에 제정하고, 매년 6월 6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유대인은 욤 키푸르가 돌아오면, 1년에 한번씩 자기 반성과 회개의 날로 정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1년을 돌아보면서 반성한다.
구체적으로 남에게 빛이 있으면 갚아야 하고, 손해 끼친 일이 있으면 변상을 한다.
의견 충돌로 다툰 일이 있으면, 찾아가서 용서를 빈다.
자기가 1년 동안에 저지른 허물을, 모두 용서를 빌고 갚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보상해야 한다.
그래서 욤 키푸르 날이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고, 보상하고, 회개하기 위해 바빠진다.
가정은 가정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반성한다.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싸우다 간 애국투사들을 위한 날로 생각하면서, 속죄일을 맞는다.
속죄일에는 거의 금식하면서 지내고, 종일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 날은 기차, 버스, 택시 등 모든 교통수단이 정지된다.
신문, 라디오, TV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비행기도 들어오지 못한다.
안식일에 외국 비행기는 들어올 수 있지만, 욤 키푸르 날만은 외국 비행기도 절대 들어올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충일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
6월 6일 현충일은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다.
이날은 슬픈 날이요, 조국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날이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이,
조국을 위해 민족 앞에 피를 뿌려 산화했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철없이 오락을 할 수 있나?
이 날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참회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이 되기 바란다. 성도간의 불화를 회복하는 날이 되기 바란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이 다시는 없도록, 역사를 돌아보며, 사랑하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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