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10일 (토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선한 목자 예수
    2002-06-13 20:06:49   read : 296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예수의 매력(8) -

    요한복음 10:7~15
    석원태 목사

    우리는 계속해서 ‘매력’이라고 하는 말을 기억하며 새기는 중에 있습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서는 이 매력이라고 하는 말이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선’ 혹은 ‘좋은’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가도스’(ajgaqov")입니다. 이 말은 실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좋을(선함)뿐 아니라 눈에도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좋은 소식’(롬 10:15), ‘선한 사람’(마 5:45), ‘선한 양심’(딤전 1:5, 19), ‘선한(착한) 일’(빌 1:6) 등의 경우를 뜻합니다. 그럼에도 주로 정신적이요 내면적인 것에 중심을 둡니다. 이 말은 도덕적인 의식에 치중합니다.

    또 하나는 ‘칼로스’(kalov")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0)고 하신 경우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선함이나 아름다움, 사랑스러운 것, 우아함, 명예스러운 것들과 관계하면서 주로 눈(eye)에 호소하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기에 아름답고 또 생김새가 좋은 모습이나 잘 생겨 멋을 나타내는 사물의 경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신약성경에 이 매력이라고 하는 단어 칼로스(kalov")가 가장 빛나게 사용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의 선언 중에 하나였던 「나는 선한 목자라」(ejgwv eijmi oJ poimh;n oJ kalov")(요 10:11, 14)고 한 사실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 목자’, ‘그 선한 자’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의 목자성(牧者性)을, 아름다운 자태를 눈에 호소하고 있는 칼로스(kalov")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의 목자됨이 정신적이요 내면적인 사랑에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행동적으로 나타나는 가시적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목자됨은 양된 우리에게 매력적인 존재라는 뜻이 됩니다.

    그의 매력적인 목자성이 무엇일까? 선한 목자성이 무엇일까?


    Ⅰ. 먼저 이 말은 거짓 목자와 대조해서 사용하신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외에는 선한 목자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목자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에 저들은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 저들은 ‘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은 양을 모르고, 양도 저들의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저들은 ‘도적’이라고 하였습니다. 12절에는 ‘삯꾼’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양의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와 양을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양도 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달아나는 것은 삯꾼인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0:13). 그러므로 저들은 목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0:12). 저들에게는 목자로서의 매력(칼로스)이 전혀 없다는 뜻이 됩니다.


    Ⅱ. 예수 자신만이 선한 목자, 곧 매력있는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목자적 매력이 무엇일까?

    1. 자기 양을 ‘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15절에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안다’는 말 기노스코(ginwvskw)는 전부를 안다는 뜻입니다. 독점적인 앎, 구체적인 앎, 시종을 아는 앎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마치 성부가 성자를 알고 성자가 성부를 앎같이, 남편이 아내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다 아는 것 같은 앎을 가리킵니다.

    양의 각각의 이름도 압니다(요 10:3). 음성도 압니다(요 10:3, 4, 27). 수도 압니다(눅 15:4). 이리나 도적이나 삯꾼 앞에 약한 것도 압니다(요 10:12). 목자를 치면 양떼들이 흩어짐도 압니다(슥 13:7). 내 양, 곧 자기 양을 압니다(요 10:27). 양도 목자를 압니다. 음성을 알고 따른다고 하였습니다(요 10:3, 5, 27).
    바로 이것이 그의 선함입니다. 곧 매력입니다. 예수는 자기 양을 압니다. 개인 개인을 압니다. 마음도 압니다. 몸도 압니다. 시작도, 진행도, 마침도 다 압니다. 바로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선함, 곧 매력입니다.

    2.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17절에도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고 하였습니다. 18절 중에는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의 매력(칼로스)이라는 말입니다.

    성경기록 시대의 팔레스타인의 유목민들에게 있어 목자와 양의 관계는 실로 생명적 결탁의 관계였습니다. 목자와 양, 우리, 목장, 곧 초원과 시내는 불가분리의 관계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15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서로를 알기 때문에 생명적 결탁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동시에는 목자와 양이 함께 들판에서 야숙을 하는 임시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니면 천연적인 동굴을 이용하여 영구적인 양들의 우리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는 돌을 가지고 벽을 쌓아 양들을 보호하는 요새를 만들고,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지붕을 덮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아치형의 문도 만들었습니다. 바깥쪽에는 넓은 울타리를 하나 더 세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도나 절도나 다른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날카로운 가시덤불을 세우고 덮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목자는 그 양들과 사실상 삶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그 꼴을 찾아 밖으로 나갈 때 목자는 문곁에 서서 그 양의 수를 헤아려 점검하고, 어두운 밤이 되어 우리로 들어올 때도 목자는 문곁에 서서 양의 수를 한 마리, 한 마리 확인합니다. 어떤 경우 그 수가 모자랐을 때, 목자는 길을 잃은 양을 찾아 찾도록 찾아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눅 15:3~7). 이런 경우를 총칭하여 ‘인도’라고 하였습니다. 앞서가는 인도, 솔선하는 인도입니다(요 10:3, 16).
    이럴 때 목자는 결코 단순하고 냉정한 직업의식만 가지고 그 양들을 돌보지 아니합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양들을 사랑해 버립니다. 그래서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 양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도, 자신의 위험이나 고통 따위는 아랑곳없습니다. 그의 의식에는 오직 아픈 양, 병든 양, 잃어버린 양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들은 양들을 위하여 하루에 몇 시간을 돌본다거나, 일주일에 며칠씩 목장에 간다거나 아니면 자기 노동의 대가를 계산하지 아니합니다. 목자에게 있어서는 매일매일의 낮과 밤이 그리고 그의 전 삶의 재능과 힘이 양의 우리에 있고, 양의 목장에 있게 됩니다. 그는 양의 문이기 때문에(요 10:7, 9) 그 자신이 양 우리의 문에 가로누워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 그 목자에게는 삯 이전에 양이고, 자기 사랑 이전에 양을 사랑함이고, 양을 위한 희생이 목자의 목자된 전부가 되고 맙니다. 바로 여기에 목자된 자신의 존재의미와 내용과 목적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목자적 삶을 가리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목자가 바로 선한 목자, 좋은 목자, 매력있는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십자가의 자기희생이 매력의 전체란 말입니다.

    3. 이러한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고 하였습니다.
    나만이 매력있는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 ‘그 매력’의 정체가 무엇인가? 바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창세 이래로 인생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은 자가 있는가? 부다인가? 소크라테스였던가? 모하메드였던가? 아니면 공자, 맹자였던가? 아니면 저 헬라와 로마의 궁중철학자였던가? 아니면 세기적인 역사의 영웅이었던가? 호걸이었던가? 가인이었던가? 재사였던가? 누가 감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할 수 있었던가? 그리고 행동하였던가? 예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래서 예수님이 ‘나만이 선한 목자이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만이 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설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로스(kalov")의 기본 개념은 ‘매력적인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칼로스라고 하는 단어를 아름다움, 좋음, 선함, 관용, 우아함, 매력… 등 문자적으로 그 뜻을 다 나타내기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사실상 이 매력(선함, 좋음…)이란 단어 칼로스는 하나님의 자기 사랑 아가페(ajgavph)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마음을 가진 자의 행위에서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가질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성격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에게서만이 참 선한 것, 좋은 것, 매력적인 것, 아름다운 것, 우아한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행동으로 폭발되었을 때, 비로소 선한 것이 무엇이고 매력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정말 서로의 매력에 이끌리어 행복을 만끽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혈통적인 뜨거움이 그 사랑을 나타내는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손자에게 있는 그 이상한 매력, 손자에게 나타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 이상한 매력은 알고 보면 사랑관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라고 하신 것입니다.
    매력(선함) 즉 칼로스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희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희생의 정체는 바로 십자가가 아닌가!
    종교는 참으로 많고 또 많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의 자기 희생,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양초는 남을 밝게 해주면서 자신은 소비됩니다. 그것이 양초의 매력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신 말씀은 그야말로 칼로스의 뭉치입니다. 매력(선)의 총체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의 영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인자됨의 영광은 행동하는 희생,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죽고자 행동하였을 때 다시 사는, 다시 얻는 생명! 그것이 매력의 본체입니다.

    - 아 멘 -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청교도와 감사절
    나그네의 감사기도
    하나님의 큰 일
    소리지르는 돌들
    기독교의 절대성과 배타성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2)
    나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1)
    시대의 표적
    주5일 근무제
    믿음의 시련(2)
    믿음의 시련(1)
    일곱 금촛대와 일곱 별
    헌당 기념 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6월의 아픔, 6월의 기쁨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