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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을 믿는 삶
    2002-06-07 19:41:42   read : 303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강 원 룡 목사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25:7 ~ 8

    또 주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서신서의 말씀: 고린도서 15:42 ~ 44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21:13 ~ 15

    예수께서 가까이 와서, 빵을 들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또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내 어린 양을 먹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저는 부활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때가 있었습니다만,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부터 오랫동안 부활이라는 것을 흔히들 설명하듯이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해 왔습니다. 교회를 은퇴하고 난 뒤에도 오늘처럼 부활절 설교를 맡게 되곤 하는데, 역시 부활절 설교처럼 힘든 설교가 없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부활절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렘브란트라는 화가가 그린 부활절 그림입니다. 그 그림은, 부활절에 한 목사가 부활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앞에 앉은 여자가 그 말을 알아들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고, 목사는 알아듣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여자는 결국 알아듣지 못하고, 목사는 알아듣게 못해서 고민하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잘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어떤 점으로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도 골로새서를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다, 감춰져 있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예수의 부활을, 예수께서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살아 나왔다는 이야기를 천사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을 모른 채 덮어놓고 믿는 것인가? 성서에 쓰여져 있으니, 그저 그대로 믿으면 되는 것, 그런 것인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사건은 우주가 생겨서 앞으로 없어질 때까지 단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말은 부활 사건이 역사적 법칙 아래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우리들의 일상적인 상식을 가지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모르고 믿는다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칼 융의 무의식의 심층심리학을 압니다만, 무의식 이것이 요사이 신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학계에서 새롭게 깊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표면의식은 누구나 다 알지만, 잠재의식의 세계만 되면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무의식의 깊은 세계야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 세계가 있고, 그 징조 또한 여러 가지로 있지만, 우리가 설명해낼 수는 없습니다. 내 뇌 속에 있는, 나를 깨닫게 만들고 말하게 만드는 이 뇌세포들이 10분지 1밖에는 활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죽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신비의 역사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느냐? 예수의 제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리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정작 예수가 십자가에 죽자, 저분이 사흘 후에 살 것이다라고 기대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사람들도 시체에 기름을 바르려고 갔지, 살아난 예수를 보려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 도망쳐 흩어졌습니다.

    그 후 예수가 열세 번을 제자들 가운데 나타났는데, 나타날 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때는 같이 밥도 먹고 얼굴도 볼 수 있게 나타나고, 어떤 때는 엠마오 길을 같이 걸어가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나타납니다. 엠마오 길에서 함께 얘기하면서 가던 제자들의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그의 얼굴이 보이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삶 속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증거하는 데에 목숨을 걸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을 증거한 것이 기독교가 지나온 길입니다.

    제자들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는 결국 뭡니까? 여기에서 부활이란 무엇이냐,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으면 그게 내게 구체적으로 뭐냐 하는 것은 따지지 마십시오. 나는 안 따지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부활한 예수 그분이 현재 내 안에 살아 계시고, 그분 안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십자가에서 죽은 내 살을 먹고 흘린 피를 마시면, 너희가 내 안에 살게 되고 내가 너희 안에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란 것이 대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호흡이 끊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했는데, 요사이는 뇌가 죽는 것을 죽음이라고 보고서 뇌사를 말합니다. 무엇이 죽음이냐? 호흡이 끊어질 때 죽음이냐? 뇌가 움직이지 않을 때 죽음이냐? 토론해볼 문제이겠습니다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이 있다 이 말입니다. 누가복음 9장 60절에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겠다는 사람이 장례식에 갔다오겠다고 하니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게 하지, 살아 있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느냐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죽음과 삶이 뭐냐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호흡도 하고 뇌도 살아 있지만, 사실은 죽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부활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사는 그 삶이, 부활을 믿는 그 삶이 제자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8절에서 자기 얘기를 합니다. 자신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일어서고, 완전히 낙망 속에 떨어졌지만 사실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패러독스, 역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가지고 역설을 얘기합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차에 치이면 죽는 것이지, 차에 치일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내려와 차에서 그리스도인을 빼낸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냥 똑같이 죽는 것, 병들면 죽는 것, 인간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우리에게 죽음의 세력이 당장 목숨이 끊어지는 형태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독 속에 떨어지는 때, 극심한 고통 속에 떨어지는 때, 모든 것에서 소망을 다 잃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희망이 솟아나고, 새로운 무엇이 용솟음치게 되는 것, 그것이 부활을 믿는 삶 속에 일어나는 패러독스입니다. 죽음의 현실을 뚫고 생명이 솟아 나오는 그것을 내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합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고통과 죽음의 원인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이 우주만물을 사랑으로 만들고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었는데, 여기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자기를 위한 탐욕, 하나님처럼 되려는 하와의 욕심, 이러한 욕심이 생기면서 사랑이 깨졌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사랑이 깨지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 깨졌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예" 하고 뛰어나가던 아담이 숲 속에 숨는 그러한 단절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 왜 슬프냐? 죽음은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그럼 이런 관계의 단절이 내 목숨이 끊어질 때 오는 것이냐? 그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사랑이 다 깨져서,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어 있는 인간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바로 그 예수의 살을 먹고, 그 흘린 피를 마심으로써,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는" 그때에 우리에게서 어떤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오늘 여러분이 같이 읽은 요한복음 21장 거기에 분명하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전혀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절망하고 실망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가 나타나 조반을 지어 같이 먹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황홀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확실하게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이제는 부활을 믿느냐?" 이런 말씀은 전혀 없고, 다른 말씀을 집요하게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사랑합니다."

    "그게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그러면 내 양들을 먹이라. 내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죽어 가는 내 양들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해라.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네 안에 살아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부활절에 "내가 믿는 부활은 뭐냐?" 하고 말하기 전에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부활한 예수는 40일 간 있다가 승천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없습니다. 그런 예수가 어떻게 우리와 함께 있습니까? 승천한 예수의 영이 성령으로 내 안에 와 있습니다. 내 삶 속에 그분이 들어온 그것이 죄 사함으로 나타납니다. 미워하던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고,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생각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런 삶으로 바꿔집니다. 그것이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그분을 내가 모시고 산다는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성찬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떡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떡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떡과 잔을 마시는 것은 십자가에서 찢긴 예수의 살을 먹는 것이고 예수가 흘린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죄를 이겨보겠다고 금욕을 하고 각별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함을 받았습니다. 내가 한 일로 자책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안 짓고 사느냐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며 사느냐 하는 적극적인 삶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부활한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증거를 삶 속에서 실지로 발견하고 있습니까? 매일 매일의 삶에서, 나를 중심으로 내 그룹을 중심으로 욕심을 굳히고, 그래서 모든 관계를 깨뜨리는 그것이 모두 바뀌어집니다. 죄를 이긴 것이 아니라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너 나가서 죄짓지 말아라." 하는 것은 신앙에 이르지 못한 사람의 말입니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2절, 13장 3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계명은 하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나 자신의 생활 속에서 정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도 오래지 않아 죽을 사람인데, 여러분보다는 아마 내가 먼저 죽을텐데,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예전 같으면, 내 육체는 무덤에 가고 내 영혼은 하나님 곁에 가 있다가, 예수가 재림하면 다시 그 몸으로 살아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 없어요. 나는 죽은 후에 저 세상에 가게 되면, 거기서도 하루 세 끼 밥을 먹는지, 거기 온도는 평균 섭씨 20도인지 40도인지, 추운지 더운지 그거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그것도 모르겠어요.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로마서 8장 39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이 유일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게서 모든 것이 단절되고 끊어지고 끝나버리는 그런 시간이 오지만,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릴지라도 결코 끝나지 않는 하나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그리스도가 그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이 관계, 이 사랑의 관계, 이것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나는 죽음의 한계성을 거기에서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살아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겠느냐? 미안하지만 목사인 내게 물어보지 마십시오. 내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믿음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모른다는 것이 가장 정직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오정임 집사가 오늘 나왔는데… 아마 지금 누구보다도 슬플 거예요. 왜? 누구보다도 고 김희석 집사를 사랑하니까요. 사랑 때문에 슬픈 거예요. 사랑 때문에 슬프니까 그 슬픔은 사랑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는 그런 눈을 가지면 됩니다.

    다만 한가지 남는 문제는, 부활을 믿는 나의 구체적인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내 양들을 먹이라"는 것입니다만, 그게 뭡니까?

    제가 긴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팔십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경험 못해 본 것을 금년에 겪었습니다. 그것은 황사 현상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황사란 공기가 죽은 것이고, 그 죽은 공기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입니다. 공기가 죽음의 힘으로 화해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2002년인데,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2002년은 전쟁의 해라고 선언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게 뭡니까? 모든 걸 죽여버리는 겁니다. 결국 생명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그런 죽음의 세력이 인간의 저변에, 사회 전체에, 이 생태계 전반에 지금 이처럼 퍼져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부활을 믿는다면, 이 죽음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음의 세력 가운데에서 정말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러운 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맑은 물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참된 삶이 죽음을 정복하고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나 자신은 그렇게 사느냐?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나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이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와 끊어지지 아니합니다.

    그 사랑이 모든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는 그날, 죽음이 없는 하늘과 땅이 임하는 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날,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는 그날을 향해서, 나는 지금 현재 일곱 번 넘어졌다가도 여덟 번 휘청거리며 일어설 것입니다. 정말로 죽음을 물리치고 생명을 위해 사는 참된 삶, 넘어졌다 일어서고 휘청거리면서 또 일어나는 그 삶을 내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이어갈 것이고, 그것이 끝나는 그때에 전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사랑의 품속에 나를 영원히 안아줄 것을 기도합니다.

    그때 그 모양이 어떤 것이 되겠느냐를 물어보지 말자는 말입니다. 다만 그날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현재 부활이 내 안에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가 현재 내 안에 살아 계셔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부활을 믿는 삶이 여러분과 내게 있다면, 오늘 구원 얻고 해방 받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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