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크신 은혜라 2002-07-19 18:51:07 read : 294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7월14일 맥추감사절)
신명기 16장 9-12절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늘 속이 좋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자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이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하나님에 대한 원망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졸업한 신학대학의 학장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이따가 집에 들어갈 때 노트를 한 권 사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사모님에게 그 노트에 감사할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하지만 목사님이 방을 나가고 한참 뒤에 사모님은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한 두 줄씩이나마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이 감사할 것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라 뭐든지 잘 잊어 버리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손자 손녀 이름도 자신의 결혼 날짜도, 나이도 잊어 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에빙하우스란 분이 무의미한 철자 1200개를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동안 기억하는 가를 시험해 보았답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55.8%를 잊었고 하루가 지나자 66.3% 한달이 지나자 78.9%를 잊더라는 것입니다. 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다 잊어버려도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의 절기를 만들어 주시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7일간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460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니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우리를 향한 이토록 귀한 은혜를 알고 계십니까? 오늘 맥추 감사절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주의 크신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 결핍증에 걸려 있습니다. 감사 결핍증보다 감사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발달된 물질문명은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부자는 배에 기름이 껴서 하나님을 잊고, 가난한 사람은 배가 고파 하나님을 잊고, 배운 사람은 적은 지식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기억치 않고, 무식한 사람은 무식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법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할 모르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돈, 명예, 권세에는 머리를 숙이지만 하나님께는 머리 숙이지 않습니다.
손발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머리도 입도 뒤틀리는 찬송시인 송명희씨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외치고 삽니다. 부모님이 결혼할 때 너무 가난해서 많은 축하객도 없는 셋집 앞마당에서 결혼하였답니다. 그녀는 의사의 부주의로 뇌손상을 입고 태어나 뇌성마비가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분유를 먹일 수 없어 쌀을 빻아서 가루를 맹물에 타 멀건 물을 먹이는 게 아기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답니다. 이유식, 유아교육, 백일잔치 돌잔치는 꿈같은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그가 자라 어느 날 방송국에 다니는 모 장로님이 딱한 사정보고 미국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고 공부시키겠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녀는 "난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살겠어요!" 그 때 그 장로님을 그녀를 껴안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습니까? 조금 잃었다고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시편 69편 31절을 통하여 시편기자는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치 못하는 생활이 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봅시다. 그리고 하나 하나 감사 합시다.
둘째로 나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금년도 반년을 살아왔지만 정말로 경제적으로 힘에 겨운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부패한 인간의 본성은 어려운 일만 기억을 하고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이만큼이라도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외적인 환경입니다. 조금이라도 일이 잘 되면 그럴만한 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환경에 돌립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께 원망을 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하는 잘못된 습성입니다.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모든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리고 거기에 합당한 영광과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미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수한 고난 끝에 백화점 왕이 되고, 재무부 장관이 되고, 미국의 10대 재벌에 든 사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죤 위너 메이커씨가 100만달라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시절, 애들이 줄서서 감사 예물을 바치는데 집이 너무 가난했던 나는 빈손으로 온것이 너무 괴로와 주일학교 끝나고 오후에는 벽돌 굽는 아버지 공장으로 찾아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았습니다. 잠버드 목사님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만 달라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용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찬미예수라는 찬양집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열심히 공급해 주고 계시는 분이 십니다. 그 분의 간증 중에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하루는 어떤 곳에 찬양집회를 인도하러 갔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는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찬양집회를 인도하는데 한 청년이 자기의 한 손으로 자기 뺨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찬양을 하더랍니다. 찬양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그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자 그 청년은 더욱더 열심히 자신의 뺨을 그렇게 치면서 찬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청년의 그 모습이 하도 이상해서 집회가 끝나고 그 청년을 찾았답니다. 그 청년을 만나는 순간, 그 분은 청년이 왜 그렇게 찬양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청년의 한 쪽 팔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청년은 자신의 남아 있는 한 팔로도 감사하며 찬양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 이런 기쁨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안에는 이런 감사가 있습니까? 많은 것을 드릴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있는 것으로 드릴 수 있음이 복된 일입니다. 드릴 수 있다는 것 바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셋째로 이웃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에서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노비, 고아, 과부, 객 등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빈부나 귀천이나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다 빠짐없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짝 믿음 가정은 온 가족이 하루 빨리 한 마음으로 한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강권하여 주께로 인도할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가족이 다 함께 감사 제단을 쌓을 수 있도록 소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집에 욕심많은 주인과 마음씨 착한 머슴이 살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자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머슴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저 녀석이 산에 가서 빈둥거리며 놀기만 할지도 모르니 오늘은 뒤를 한번 밟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 중턱쯤 머슴을 좇던 주인이 숨이차고 다리가 아파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못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곰이 나타났습니다. 기겁을 하고 달아나려 했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바라보는 곰을 보는 순간 빌고 또 빌었습니다. "목숨만 건질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곰이 기우뚱하며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언제 달려왔는지 하인이 곰의 등을 도끼로 후려치고 있었습니다. 곰은 죽었고 머슴과 주인은 다리를 절며 마을로 내러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회복된 주인은 환한 얼굴로 그 곰의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을 갖고 장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얼굴은 빛이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머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도끼자국 때문에 반값도 채 못받지 않았느냐?"
우리는 함께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계가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세상의 원리를 그대로 따라가며 끝없는 욕심을 채워야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갈 때 우리 인생이란 얼마나 많이 벌고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주었는가로 평가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이웃과 함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합시다. 있는 것으로 감사합시다. 더불어 나누며 삽시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찾으시는 감사의 사람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