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02-11-21 10:23:07

2002.10.27 // 로마서8:26-30절

미국 동남부에 땅콩의 생산지로 이름난 알라바마라는 주가 있다. 그 주에 있는 어떤 마을에 가면 이상한 기념탑이 서 있다. 목화를 갉아먹는 벌레들을 위해서 세운 공적비라고 합니다. 그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우리는 우리들에게 번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또 무엇인든지 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우리는 다시 한번 그대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참으로 이상한 비문이 아닙니까? 세상을 위해서 공덕을 세운 사람을 위한 공적비가 아니라 목화를 못쓰게 만들었던 목화 벌레를 위한 공적비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본래 알라바마주는 목화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알라바마주로 모일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벌레들이 나타나서 목화들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해 농사는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일꾼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제각기 보따리를 싸들고 다른 주로 이사를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도 역시 어디에서 날아 왔는지 목화 벌레들 때문에 손을 쓰지도 못하고 농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점점 어려워지고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고 감정마저 악화되어 살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살고 있는 주민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성서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반드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자기들에게 그와 같은 시련을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들은 눈물을 머금고 수십년 동안 일구어 왔던 목화밭을 완전히 갈아 엎었습니다. 그 대신 한번 도 가꾸어 보지 않았던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땅콩 산지를 만들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들이 수십년 동안 재배하던 목화를 뽑아버리고 땅콩을 심었던 그 무렵 화학 섬유가 개발되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질 좋고 값싼 나일론으로 만든 인조 옷감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값이 비싼 목화로 만든 무명 옷감은 팔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주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알라바마주는 목화 벌레들 때문에 일찌감치 땅콩으로 전업한 결과 저들은 번영의 길을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목화 벌레에 대해 감사의 뜻으로 공적비를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길를 걸어가다 보면 늘 우리 앞에 탄탄대로만 놓여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 걸림돌에 걸려서 넘어질 수도, 무릎을 깰 수도 있도 있습니다.

캄캄한 턴널같이 느껴지는 암담한 때도 있습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허우적 거리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기도 하고 다리를 다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걸림돌에 부딪쳐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에게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새힘을 주셔서 다시금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걸려서 넘어졌던 그 걸림돌이 오히려 우리들에게 디딤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시든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확실한 것을 찾습니다. 확실한 친구, 확실한 사업, 확실한 권력. 확실한 기반 등을 보장받기 원하지만 이 세상에 확실히 믿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첫째-“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서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어려움도 도우십니다. 이 약속은 확실합니다.

둘째-“하나님이 부르신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좋아야 좋은 줄 압니다, 오늘도 내일도 늘 좋아야만 합니다. 잘되어야만 합니다. 항상 좋은 소식만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비가 오고 천둥이치고 어둡고 캄캄한 밤이 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묶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십니다. 합력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합력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 합력하여 우리의 모든 삶이 성공하는 삶이 되도록 하십니다.

셋째-“성도들을 영화롭게 만들어 줍니다”.
30절에“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무한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고 땅에서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셔서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 저는 언제 우리가 읽어도, 또 언제 들어도 우리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참으로 귀한 말씀 28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늘 암송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마음 속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놀라운 평강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음에 평강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가 알거니와“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원토록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우리들에게 대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절대불변의 진리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다 변합니다. 우리 인간의 지식도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시시때대로 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약속도 때에 따라 요리조리 변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변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외교적 약속도 변합니다.

세상의 모든 약속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지식도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고 영원토록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13:8절“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우리와 맺은 주님의 언약은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천지개벽이 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이사야40:8절에“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우리가 알거니와”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 대상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성도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의 깊으신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나서도 아닙니다. 남보다 예뻐서도 아닙니다. 잘 알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일편단심 민들레 같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우리의 믿음과 신뢰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습니다. 거기에는 깊은 계곡이 있었습니다. 떨어지면 살아나올 길이 없는 절벽이었습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가느다란 외나무 다리를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제가 이 다리를 무사히만 건널 수 있도록 해주시기만 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무사히 중간쯤까지 건너왔습니다. 그랬던 이제는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돈에 대한 욕심과 애착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건너기만 해 주면 하면서 갈절하게 기도하던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하나님 저도 처자식하고 먹고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사히 건너가게만 해 주시면 제가 다는 못바쳐도 절반만큼은 뚝 잘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그러는 가운데 이제 거의 끝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기도가 또 바뀌었습니다“하나님! 제가 4분의 1만큼은 꼭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얼굴에 땀을 딱으면서“하나님! 조금 전에 제가 했던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런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지난21일부터 중3, 고3 학생들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마 전국에 있는 교회마다 입시 때가 되면 새벽기도와 철야기도회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마치 장사꾼이 흥정하는 것처럼, 또는 정치꾼들이 공약을 남발하듯이 기도로 약속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를 합격시켜만 주신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노라고, 잘 지키지도 못할 말을 말하는데 돈 안든다고 마구잡이로 합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기도보다는 이런 기도가 더 바람직 하지 않을까요?“주여!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뿌린 것만큼만 거둘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시련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길을 낙심하지 말고 잘 걷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 옛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느브갓네살 임금이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그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면 뜨거운 풀무불 속에 집어던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왕이여!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할 말이 없습니다. 왕께서 우리를 뜨거운 불 속에 집어던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능히 우리를 구해내실 것입니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왕이 만든 금신상에 절하지는 않겠나이다”이와같이 그 어떠한 처지에 놓일지라도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영원토록 동일한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일편단심 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골짜기로 데려가시던지. 먼지가 일고 있는 저황량한 광야로 몰고 가시든지. 바다로 데리고 가시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가시다가 슬픔이 기쁨이 되시고, 고난이 변하여 영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입니다.
“원수는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 때문에 우리가 강해지며, 핍박 때문에 신앙이 철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를 괴롭히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문제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역경을 통해 선해지고, 기도하게 하고, 진실하게 되고, 겸손한 자신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역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처럼 알게 되면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로마서12:19절“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원수에게 손을 대지도 말고 단지 그를 긍휼이 여기고 기도하며 사랑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아시고 처리하실 것입니다, 즉 원수를 위해서 빌었던 모든 복이 다 네 개로 온다는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무조건 그 가정을 위해 풍성한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집이 복을 받을 만한 집이면 복을 받을 것이요, 만일 복받지 못할 집이면 그 복이 비는 자에게로 되돌아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집에 가서 복을 빌어야 하겠습니까? 원수같은 집, 미운 사람의 집, 즉 복을 받지 못할 집에 가서 복을 빌면 그 복이 모두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본분만 열심히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우리가 할 일이 분명히 따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만 충실하고 그것으로 족한 줄로 알자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간간히 섭섭한 마음이 들 때가 없지 않습니다. 이럴 때 무조건 성경을 펴서 읽고 조용히 명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아무게 때문에 내 마음이 잠시 어지러워 진다면 내 손해이다. 또한 교인들에게도 손해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하면 당장 설교준비에도 방해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때문에 여러 교인이 손해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곧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걱정하지 않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우리가 개입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가 가로 맡아 월권행위로 침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움은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기도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만이 우리의 일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이 내게 협조하고 받는 교인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고 나를 비난하고 괴롭히며 비협조하는 사람에겐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주의 뜻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준 모든 여건은 전부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걱정없습니다, 염려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참 신앙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자녀나 사업 때문에 고민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신앙인의 자세를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합력하여 여러분의 머리 위에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과 생업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합력이라고 하는 말은 서로 힘을 합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한 가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한다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잘 조화되어서 우리에게 선이 되도록 만드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과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합력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의미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이 있겠느냐는 말과 같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든지 다 그 뜻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섭리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그마한 것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합니다.
이런 것은 나쁘고 이런 것은 좋다는 고정 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불안해 하며 살아갑니다. 안 되면 어쩌나 하며 낙심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을 만나도 우리는 일절 염려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아서 좋고 내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해서 좋습니다. 나를 돕는 사람은 돕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내게 가져다 주는 사람도 나를 좋게 하지만 내 것을 가져가는 사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므로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해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라고 생각하시고, 침착하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좋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자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든지.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든지 해도 절대로 그런 일 가지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요셉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참으로 행복한 가정에 자랐고, 부모님의 사랑도 극진히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부모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애굽으로 팔려갔고, 남의 집에서 종살이하다가 그 집에서도 못살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종신형을 받아 전혀 소망이 없었지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힘들고 어려울 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요셉에게 일어난 일들을 한 가지씩만 떼어놓고 생각한다면“어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그토록 어려운 길로 인도하실 수 있을까?”라고 의아심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되어진 일들을 본다면 과연 우리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삶 전체를 통해서 볼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화위복의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그 길이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곳이라도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분명합니다. 실수가 없습니다. 실패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다보면 때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스러운 본문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단비와 같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귀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판에 깊이 새기는 의미에서 다 함께 합독하시기 바랍니다.(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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