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를 훈련하심 2002-06-25 16:51:36 누가복음 18:1-8 // 2002.06.23 믿음의 기도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응답받는 기도자의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 자체가 죽었거나 병든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말했습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합니다. 기도는 영생을 가진 사람의 삶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받고 그래서 감사하는 것이 우리들 성도쪽의 반응이라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심으로써 기쁨이 충만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생존하는 것과 생활하는 것이 다른 것같이 우리가 영생을 가졌다는 것과 영생을 누리는 것은 다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 가장 원초적인 행위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첫째로, 믿음의 기도행위는 자주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재판장을 찾아가서 자주 졸라댑니다. 재판장이 말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게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의 기도를 훈련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능력있는 설교는 설교만으로도 수십 번의 훈련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믿음의 기도를 훈련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신다고 믿으십니까? 자주 기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자주 나와서 밤낮 주님앞에 기도하는 자세, 그것은 하나님께 굉장히 행복한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불의한 재판장을 보세요.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이 사람도 견디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아버지시겠습니까? 기도는 이론의 이해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생생한 관계입니다. 두말없이 자주 나오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우리들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가만히 들어누워 명상하고 사색하고 혼자 결론짓는 것은 철학이지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자주자주 그 문제를 그분에게 가져갑니다. 주님이 계신 곳,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주의 전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는 것입니다. 시 65:4에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고 했고 시 84:4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고 했으며 요 10:9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러 교회당에 드나드는 것,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고 기록된 바 됩니다. 귀중히 여기심을 받아 반드시 응답받게 됩니다. 한국 축구의 히딩크 사단이 지난 반년 동안 남들보다 열심히 훈련한 결과를 우리가 보고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도 이 반년을 집중적으로 치열하게 기도하면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줄 믿습니다. 나의 기도제목이 어떤 형태로 응답되든지 그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의 행위로 간주해 주십니다. 둘째로, 믿음의 기도는 구하는 행위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녀는 밤낮 나와서 "원한을 갚아주소서"라고 부르짖었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분명했습니다. "내 원한을 갚아주소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재판장은 그녀의 송사내용을 하도 많이 들어서 넌저리가 났습니다. "알았다 내가 풀어주리라 그 여자를 해친 원수를 잡아들여라 그 여자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주어라" 성질이 급하고 고약한 재판장이 홧김에 싹 풀어주고 말았습니다. 마 5:7-11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네가 분명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바로 그것을 내가 응답하리라 네가 구하는 것들 가운데 제일 좋은 것, 네가 찾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 네가 두드리는 것들 가운데 최고 최상의 것, 바로 그것을 네게 안겨주리라 나는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준 네 하나님이 아니냐" 믿음의 기도는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 하나님과 나, 공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주님이 원하시는 과녁을 맞추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번 제17회 월드컵 축구대회를 보세요. 온 국민들이 열심히 기도하니까 4강에 들게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세계선교에 크게 이바지하라고 우리나라를 높여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가 세계 속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게 된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도 젊은이 국외 단기선교를 위하여 정성껏 헌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젊은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기대하고 있는가를 보여줍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내게는 복이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빛이 되며 하나님께는 영광이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자주 나와서 믿음으로 기도해 보세요. 여러분의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점점 명료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함께 하셔서 마땅히 믿고 구해야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롬 8:26에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믿음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듯이 우리의 기도도 기도에서 기도로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뭔가를 구하는 막연한 단계에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일정한 방향을 정해서 구체적으로 찾는 단계로 진행합니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것이구나" 하며 두드리는 단계로 발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친절하고 세밀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 두 번째 요건은 구하는 행위 자체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듣기도 하고 몇 시간이나 조용히 하나님의 교정과 조명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구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내가 무엇을 구하는지 명백하게 모를 때는 하나님이 응답하셔도 무엇을 응답받았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하고 세밀한 것을 구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아, 하나님이 응답하셨구나" 이렇게 깨달으면 우리의 마음에 감격과 기쁨이 충만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기도는 끈질긴 것이 그 특징입니다. 조선일보 만물상(1992. 10. 24)에 보니 Steady Eddie란 말이 있어요. 꾸준한 에디, 신임 필리핀 대통령 라모스를 두고 한 말입니다. 전임 마르코스의 횡포와 아키노 여성대통령의 한계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이 산산히 부서졌는데 라모스 대통령이 취임 후 5개월 동안 꾸준히 전국을 돌며 단합을 호소한 결과 이제는 전국민이 하나로 뭉쳐졌다는 것입니다. 라모스 대통령 자신에 대한 지지도도 25%에서 70%로 올랐습니다. 꾸준한 접근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동서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꾸준히 접근할 정치지도자는 없을까? 꾸준히 있는 것은 대통령의 외유뿐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그 사안에 대하여 책임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끝까지 기도합니다. 창 18장에 나오는 Abraham의 조카 롯을 위한 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여섯 번이나 조건을 바꾸어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응답받았습니다. 조카 롯과 그 가족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읍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 여러분 자신과 자녀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을 볼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도 그 일의 귀추를 볼 때까지 책임지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책임을 느끼고 끝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계획과 뜻을 성취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롯을 구해내기로 작정하셨지만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그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작정했지만 아브라함과 다윗의 역사를 통해서, 요셉과 마리아의 희생을 통해서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송도제일교회를 세우시고 이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실 때도 반드시 저와 여러분의 꾸준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선포의 일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러한 각주를 남기십니다. "하나님이 송도제일교회 집사와 장로, 교사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사 20c말과 21c초에 한국과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셨더라" 넷째로, 믿음의 기도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저는 옛날부터 기도를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 묘한 거부반응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인식이 많이 바꾸어졌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여자는 아마 하도 답답하니까 밤낮 부르짖었겠지요. 그런데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물에 빠져가는 Peter는 숨이 가빠서만 아니라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부르짖었습니다. 마 14:30-31절에 보세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소리질러 기도하는 것은 급할 때나 믿음이 적을 때나 기도하는 방법입니까? 아닙니다. 내가 소리질러 기도하는 것은 바로 내곁에 계시는 주님이 손만 내밀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리내어 기도할 수 없다면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좋거나 깊거나 상관없이 우리가 바로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기척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는 소리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사람들의 입을 열기 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믿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내가 이 일을 할 줄 믿느냐" "믿습니다 주께서는 능치못하심이 하나도 없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로 고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입에서 나온 그 고백이 내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내 마음으로 믿는 믿음을 내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롬 10:10). 음악의 되돌이표처럼 다시 되돌아가서 말씀드립니다. 믿음의 기도, 세 번째 요건은 꾸준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책임을 느끼는 그 일을 가지고 한 두 번이 아니라 끝까지, 그 일이 이룰 때까지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믿음을 시련합니다. 오랜 시간 변함없이 나를 신뢰하고 따른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나를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교회와 가정과 국가를 위하여 진지하게 책임을 느끼며 끝까지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인격이신 주님을 항하여 음성으로 기척할 수 있는 용기와 감동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한번 기도하고 그만두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책임질 줄 아는 신실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정처없는 떠돌이요 여기 붙고 저기 붙는 자고새와 같은 사람입니다. 믿음의 기도, 네 번째 요건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입으로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갈망과 열정, 위급과 안타까움을 때로는 눈물과 통곡으로 때로는 외침과 고함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의 기도는 자주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믿음의 기도는 부지런한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믿음의 기도는 분명한 간구의 촛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꾸준함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기도는 보좌앞에 메아리쳐 울려 퍼집니다. 곧바로 우리 하나님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며 우리 하나님의 발길을 서두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훈련시키신 것처럼 성실하게 기도하고 음악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훈련하신 믿음의 기도는 이렇게도 단순하고 쉽고 감동적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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