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순종하여 받드신 예수! 2002-05-14 16:34:25 누가복음 2장 51절 // 2002년 5월 12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90여년 전, 미국 어느 교회에서 생전에 카네이션 꽃을 좋아했던 한 어머니의 추도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높고 깊고 넓었던 어머니의 사랑을 잊을 수 없었던 딸이 추도식에 참석한 분들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면서 어머니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버이 주일의 효시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이 날은"어머니 주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미국의 안나 M. 자비스 부인에 의해 창시되어 미국에서 처음 지켜졌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웨브스타 감리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그녀가 이룬 수고를 기억하고 추모하게 되었습니다. 수년 후, 그 교회 주일학교 교장이 고인의 딸 안나 M.자비스 부인에게 편지하기를, 모친의 봉사 정신을 추모하며 기념하는 모임을 갖자고 제의하였습니다. 추억 깊은 교회당에서 기념회를 마친 M.자비스 부인은 해마다 한 번씩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안에 대하여 많은 지지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점점 그 일이 확대되어 6년이 지난 1914년에는 미국 상원의 결의를 얻어 월슨 대통령의 포고로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정하고 전 미국 교회가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 사람들,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이날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 주일은 이렇게 귀한 부모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랑과 헌신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희생적 사랑을 마음에 되새기며,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짐하며 예배를 드리자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의 작은 가슴으로 측량할 수 없는 어버이의 사랑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먼저 소중한 부모님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박수를 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자녀가 있는 어머니들을 그 자리에 일어 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온 성도들은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격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수로 축하하겠습니다. 아버지들도 자리에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어머니 되게 하는 일에는 아버지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자식들의 길잡이요 삶의 표준이 되어주신 아버지들에게 찬하의 박수를 보냅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육신의 부모이신 요셉과 마리아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구절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어 사람으로 사시는 동안에 그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지극한 효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기독교를 효의 종교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예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 대단한 축제를 가집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백만이 넘는 사람이 모여 한 주간 동안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나 축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끝나고 각각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나사렛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돌아오는 일행과 함께 하리라 생각하고 나사렛에 와 보니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놀란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이나 찾아찾아 예루살렘까지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찾는 예수는 성전에서 랍비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놀라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리아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고 섭섭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비록 사람의 몸을 입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깊이 교제하기 위하여 아버지 집인 성전에 있는 것이 당연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만 육신으로는 부모가 되는 요셉과 마리아를 함께 하여 섬기는 것이 옳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대로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육으로 부모 되는 요셉과 마리아를 결코 외면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예수께서는 효가 무엇인지를 삶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효의 원리를 깨닫고 배워 실천함으로 귀한 부모님들을 귀하게 모심으로 귀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효는 언제나 부모와 함께 하였습니다. 한가지로 내려가사라는 구절은 예수께서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살면서 부모를 섬겼다는 뜻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전에 있는 것이 마땅함을 아시지만 부모님을 섬기기 위하여 부모님과 함께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효도는 부모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일에 너무 매어 부모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하면 그것은 효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로 도움을 드린다 하더라도 함께 해야 할 때 함께 하지 않으면 진정한 효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이든 부모를 양로원이나 외딴 곳에 살게 하면서 몇 푼의 돈을 보내는 것으로 자기의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효도는 같이 있어야 할 때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함께 사시면서 섬겼다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은 부모를 부모로서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말이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근자에 많은 젊은이들이 나이든 어른들이 구 시대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의 교훈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의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큰 잘못입니다. 인생의 대 선배요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얻은 경험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지혜를 무시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삶의 경륜을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혜요 자산입니다. 시편 119편 100절에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지키었더니 지혜가 노인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년륜이란 지혜와 직결됨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부모를 친구에게 소개시키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 중에는 부모님이 학교 오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부모가 자기 또래 아이들의 부모님보다 늙었다고 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이 도시에 유학 갔다 방학을 맞이하여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길가에서 풀을 베던 아버지가 반가와 하였습니다. 같이 온 친구가 누구냐고 묻자 아들이 자기 집 머슴이라고 얼버무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자신을 낳아 최고의 희생을 아끼지 않은 부모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정말 인생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명목상 육신의 아버지요 단순히 목공일을 하는 노동자에 불과한 요셉이었지만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연약하고 가난한 가정의 주부에 불과한 마리아에 대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들어 조금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부모로 인정하고 아들로서 섬겨야 할 모든 것을 섬김으로 효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금만 지위를 얻거나 부를 축적하면 마치 부모 없이 자신들이 하늘에서라도 떨어진 듯이 오만하게 행동하거나 부모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순복하였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부모를 자신보다 매사에 지혜롭고 올바른 판단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잠언 23장 22-25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하는 말을 잘 듣는 것이 바로 효도의 출발입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판단하고 제 멋대로 살려는 사람들의 행동은 이미 불효가 깊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신명기 21장 18-21절을 보면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와 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하였고 잠언 30장 7절에서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부모를 멸시 천대하거나 함부로 무례한 짓을 하며 순종하지 않는 자는 죽어서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꺾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자신의 의견이 있고 주장이 있어도 부모님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고 그대로 따르는데서 순종하여 따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이든 부모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는 젊은이들의 의견이나 판단이 앞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여 따르는 사람들은 그 의견을 접어두고 부모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따르려는 사람들입니다. 효심이 지극하다는 가정을 찾아간 친구가 '자네의 자식들이 그렇게 효성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내게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빙긋이 웃으면서 아들을 불러 '아무래도 집 기둥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도끼를 가져다가 찍어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무런 대구도 없이 광으로 가서 도끼를 가져와 기둥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소문대로군!'이라고 칭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 자신의 의견이 있고 판단이 있어도 그것을 내 세우고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부모의 의견을 따르려는 자세가 바로 순종하여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고통이 극에 달하는 아픔 속에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제자에게 어머니의 남은 생을 부탁하였습니다. 정말 지극한 효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들, 진정 신앙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님의 효심을 배우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헤르만 헷세(1877-1962)가 부모님의 은혼식에 드린 시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면서 두 분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손발이 다 달토록 오직 사랑만을 주신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도 이 시를 역시 드리고 싶습니다. 두 분에게 있어 쓰라렸던 세월은 우리들 자식에겐 빛으로 가득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더없이 즐거운 나날이었지요. 두 분의 수고와 불안을 거쳐 온 길은 우리에겐 행복한 소녀의 길이였지요. 우리에게 향내처럼 사라져 간 것이 두 분에게 지루한 것이었지요. 젊고 힘찬 손을 가진 우리는 달갑게 그 일을 맡겠습니다. 사랑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두 분의 남은 길 평안히 쉬시도록. 헤르만 헷세의 헌시처럼 우리들의 부모님들에게도 이런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보이신 부모님께 대한 효성을 배우고 닮아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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