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선택하자 2002-03-28 23:18:39 설교 본문 : 시편 50:22-23 방송 듣기 서양문화의 특징은 약속과 선택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살고, 주어진 대로 순응해 온 우리의 습관에는 굉장히 생소한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지만 서양은 반드시 약속해야 하고 무엇이든지 각자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비행기도 예약을 해야하고 음식도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때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문화는 끝없이 우리로 생각하게 하고 계획을 세우게 하고 전망을 유추하도록 부추깁니다. 왜냐하면 약속과 선택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그 결과에 대한 어김없는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1620년 영국 국교회에 의한 박해에 밀린 102명의 청교도들이 Mayflower 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대륙 동쪽 Polymouth 에 도착합니다. 기후가 다르고 원주민이 Indian과 융화가 되지 않아서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농사하여 그 다음해 가을에 추수했습니다. 그 동안에 함께 갔던 사람들 절반이 풍토병으로 죽고 55명만 남았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만 믿고 이국만리 땅으로 떠나온 이들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는 대신에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남은 청교도들은 원주민 인디언 100여명을 초청하여 칠면조 고기를 잡고 많은 과일과 떡을 준비하여 3일 동안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그것이 기원이 되어 국가적인 명절로 법제정이 됩니다. 초대 대통령 Washington은 11월 25일을 추수감사절로 공포했고(1789) 링컨대통령은 11월 마지막 목요일 부터 3일간 지키며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Roosbelt 대통령 때 11월 셋째 목요일로 변경되었지요. 미국 추수감사절 제정의 역사에서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모진 역사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심령천국을 소유하고 살고 있는 신자조차도 천국의 한 부분을 맛보고 있을 뿐 안팎으로 세찬 어두움과 유혹의 파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빛과 어두움, 탄식과 찬탄, 미움과 사랑, 원망과 감사, 심판과 긍휼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천국에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이교의 문화권속에서 핍박을 받으며 혹독한 영적 시련을 겪었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고난속에 살았습니다. 성령의 처음익은 열매를 받았지만 속으로 탄식하여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더 실감나게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슬픔 중에서도 항상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회의 속에서도 기도를 선택하십시오. 불만속에서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그런데 미국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사를 선택합니다. 그것은 눈물겨운 감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의 선택을 보고 눈물어린 감사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온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시편 50편의 약속이 근대사에서 다시 진실로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2001년 추수감사절에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도 있습니다.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미 해결 받은 것도 있습니다. 젊은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오리무중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주님이 임재를 경험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어제를 회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간증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시 40편을 봅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1-2).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은혜는 차치하고 우리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허덕일 때 누가 건져 주셨습니까? 최근에 여러분이 절대절명의 자리에서 구원 받으신 경험을 기억해 내십시오. 반드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고전 10장의 약속이 사실이란 사실을 가슴깊이 몸전체로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는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13). 오늘 여러분은 그 감사를 온 몸으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오후 축전에 여러분 자신을 무대위에 올려 놓으세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자신이 감사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오늘 왼종일 이 감사속에 푹 젖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나귀나 노새처럼 되어선 안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 내 보따리 주소 하는 격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를 건져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 더 큰 구원과 더 많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이 곧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감사를 선택함으로써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영적 그레샴(T.Graesham)의 법칙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양육의 은혜, 하나님의 길러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창 48장을 봅시다. 야곱이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지요.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아버지,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소서"(15-16). 우리는 하나님의 기르시는 백성입니다. 주님은 목자로서 우리를 기르십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보호하시고 가르치시고 양육하시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봉사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기르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주셨다는 이 은혜에 대한 감사를 우리는 느낄 줄 알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평생을 참으십니다. 악한 소행을 인내하십니다(행 13:18). 우리의 죄악을 맛배기로 징계하시고는 곧 사하십니다. 넘기십니다. 잊어버리십니다. 어느 결벽증 신자가 늘 주님앞에 회개하며 살았습니다.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사실 우리중에 "나는 주님만을 위하여 삽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를 위하여 사는지 주님 위해 사는지 늘 혼동되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를 드리며 중심을 잡아갑니다. 그래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친구는 유독히 하나님앞에 완전하려고 늘 회개하며 그 느낌이 올때까지 기다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또 자기의 죄를 실토하고 이 죄를 용서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얘야, 뭘 용서하란 말이냐? 난 네 죄가 기억이 나지 않구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용서하신 것은 기억도 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죄에 대해서 만은 위대한 건망증 환자가 되십니다. 그 기억의 필름이 영영히 끊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사 26:14). 여기에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늘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계시면 우리가 어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잊으십니다.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십니다(렘 3:12). 부모님들을 보세요. 자녀의 잘못한 것을 기억지 않습니다. 늘 자녀의 잘한 것만 기억합니다.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부모님들의 말씀은 항상 애정과 호의가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쉴 수 있는 품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랄 수 있고 나래를 펼 수 있습니다. 변화와 성장이 있고 평안과 성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끝까지 참아 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 언제나 함께 계셔서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것, 그것이 길러주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게 고백하며 감사하는 야곱과 요셉을 하나님은 책임져 주셨습니다. 길을 열어주시고 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복된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복된 사건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친히 밀어 주셨습니다. 기르시는 은혜, 품어 주시는 은혜가 제일 귀한 은혜입니다. 셋째로 섭리의 은혜, 하나님의 지키시고 보호하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지키시는 은혜는 보다 극적인 은혜체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 35장에 보면 야곱이 그 집 사람들에게 말하지요.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란날에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3). 벧엘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벧엘은 그의 객지 생활의 처음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연상시키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라반의 손에서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라반을 책망하셨습니다. 형 에서의 손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에서의 덮치는 손길을, 야곱을 인도하는 손길로 바꿔 버렸습니다. 다윗도 사울의 손에 잡힐 절대절명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사 위경에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삼상 23장을 보세요. 다윗이 광야 남편 황무지 아라바에서 사울에게 잡히려는 순간 사자가 사울에게 왔습니다.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27절).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 갔던 것입니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19-21).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의 목숨을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길에는 원수가 파놓은 함정이 많습니다. 숨겨진 위험이 가득합니다. 마치 베트콩이 숨겨둔 것과 같은 부비트랩 비트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제거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싸개가 되십니다. 내 생명을 지키시고 내 기업을 원수의 손에서부터 보호하십니다. 저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잘한 것 하나도 없는데 왜 그리 사랑해 주시는지! 우리 민족의 성품에 나쁜 점이 얼마나 많습니까? 급하고 질서 잘 안지키고, 남 잘되면 배 아프고, 파쟁을 만들지 않으면 근질근질합니다. 그런데도 이 민족이 몽땅 공산치하에 들어 갈 수 밖에 없었을 때 극적으로 UN군을 움직이고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시다. 이런 행복과 평안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땀과 수고를 우습게 만드는 과소비와 향락과 사치풍토를 회개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똑똑하다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일류기업에 있는 똑똑한 장년들이 불경기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명예퇴직 공포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경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이 민족이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잘 살 수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나를 길러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위험에서 나를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보루인 우리들의 교회로 인하여 감사합시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교회는 여러분을 위한 것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송도제일교회는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또한 온 세상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우리는 서로에게 종입니다. 서로를 섬기며 감사합시다. 손에 손잡고 담을 넘어서 온 세상을 하늘가족 공동체로 세워 갑시다. 우리 교회의 얼굴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작은 동네 송도 암남동의 비탈(pass)에 천명이나 모이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주님의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 주님의 비전에 동역하는 교회를 끊임없이 지향해 왔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교회가 교회다운 면모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과 목적은 예배 공동체, 양육과 교제, 사역과 선교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하늘가족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사도화 훈련을 받으며, 젊은이를 열방으로 보내는데 있습니다. 금년 추수감사절에는 교회적 은혜에 대한 감사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대대로 시온의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시 128:5-6). 오늘 본문은 또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은 은혜를 욕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할 때 영광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찬미하도록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예사롭게 여기고 만홀히 취급한다면 우리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이고 저주받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그 행위로 옳게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제일 좋은 복을 주시고 천국을 주십니다. 금년 추수감사절에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여러분의 심령과 생활속에 더 큰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이전글 [주준태 목사] 만날 만한 때에, 가까이 계실 때에 :: 목록 :: 답변 :: 수정 :: 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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