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은혜 2001-12-24 11:57:53 갈 4:3-7 크리스마스 절기가 있는 매년 12월이면 저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들을 갖습니다. 대도시의 유명 백화점이나 상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들뜬 기분으로 가족·친지·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간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큰 축제일로 생각하고 그 날만큼은 기쁘고 즐겁게 보내려고 합니다. 환경이 주는 영향도 있고 시간적으로 볼 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경건하고 엄숙한 의미와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고와 반성을 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런 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마음속 깊이 깨달아 내적인 즐거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아직 이 땅에는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 여전히 많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탄절을 통해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예수님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께 너무나 큰 선물을 받았음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해가 지나감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은 다만 다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새날이나 새 것도 없고 새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은 하루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그 귀한 선물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4가지 중요한 신앙의 기틀 우리 기독교 신앙에는 4가지 중요한 신앙의 기틀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창조 신앙이고 둘째는 임마누엘 신앙이고 셋째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신앙이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재림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죄 아래 있고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기업을 누리게 된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예수님 오시기 전 우리 인간의 비참한 모습과 실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했다. 우리가 율법 아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정죄 되고 율법과 죄의 종노릇하던 삶을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뭐니 뭐니해도 가장 비참한 삶이 종의 삶이고 노예의 신분입니다. 종에게는 자기 인권이나 권리나 소유가 없습니다.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마저 자동으로 다시 종의 신분이 됩니다. 종은 짐승처럼 마구 다루어집니다. 옛날 예수님 시대에 보면 종이 되는 몇 가지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남의 돈을 빌려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빚 때문에 종이 됩니다. 다음으로는 전쟁에서 전쟁포로로 사로잡혀갈 때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의 자녀로 태어나면 자연히 종이 됩니다. 한번 종이 되면 누가 빛을 갚아주거나 탕감해 주지 않는 한 종에서 자유인이 되는 길이 없었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것을 가만 보면, 누가 주인이고 누구 일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꾼은 시작하는 시간, 마치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킵니다. 그러나, 주인을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이야 어떻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새벽에 나가기도 하고, 한 밤중이 되어도 계속 일합니다. 일꾼은 명령을 받아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기쁨으로 일합니다. 하고싶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규칙과 계율과 명령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쁨으로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처럼 일하는 사람도 있고, 주인처럼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나 상급 때문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상 때문이 아니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특성들이 율법적인 종교인과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8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 아닌 존재들에게 종노릇하였습니다. 참된 하나님을 모르기에, 거짓존재들에게 종노릇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의 종 된 우리 인간에게 기쁨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4절에 보니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때가 차매"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하였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사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희생이었습니다. 성탄은 이 고통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고 축복 받게 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된 임마누엘의 축복과 사랑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인간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죄인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요 내용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 이브를 유혹해서 범죄케 한 뱀을 향해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권세와 세력을 꺾으시고 인간을 그 손에서 빼앗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우리의 고독과 아픔, 슬픔과 고통, 헐벗음과 굶주림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기에 큰 위로가 있습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 그가 채찍에 맞고 찔림은 우리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아래 나게 하셨다 율법으로 우리는 정죄 아래 있게 되었다. 죄를 범한 우리는 법에 의해 모두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의롭다고 판단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율법 아래 태어나셔서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쏟아바침으로 그 모든 율법의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았으며 그래서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성탄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 질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나를 구원의 자리에 이끌어 줄 어떤 분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가짐. 그것이 곧 심령이 가난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되어질 때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어질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이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말씀에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구속자이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곧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율법을 통해 스스로 무엇인가를 지켜 갈려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붙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종교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을 붙들고 한 평생 그것을 가지고 씨름합니다. 이 율법을 주신 목적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오신 예수에 대한 이해를 할 수가 없으며 진정 그를 나의 구 주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영원한 구원의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종이 아니라 아들로서의 유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성탄절은 홀로 된 자나 병상에 있는 분들이나 객지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더 외롭고 쓸쓸한 계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뻗치고 베푸는 계절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겸손의 마음이어야 한다. 아기를 낳을 때는 모든 이가 협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베들레헴 지역은 얼마나 인심이 강퍅했는지 하나님의 아들이 마구간 말구유에서 나셔야 했습니다. 너무나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탄생 사건에는 하나님의 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스러운 하늘 옥좌를 버리시고 친히 종의 형상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세계에 오시되,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한 유대 땅의 한 가난한 목수 가정을 택하시고 오셔서 일생동안 비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 틈에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말구유에서 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비천한 이들의 왕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높은 왕궁의 황금 요람에서 나시고 자라셨다면 우리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병들고 눌린 자들에게는 감동을 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말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 생각할 때마다 감동이 옵니다. 위로가 됩니다. 말구유에 누심으로 그는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초청장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강한 자리에 있을 때는 결코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이 풍부하고 강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에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외롭고 지치고 허무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자들이 예수님을 찾고 영접하기가 쉽습니다. 삭개오는 오직 그의 마음이 출세욕과 물질욕으로 가득 찰 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출세를 하고 상당한 돈을 모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큰 허탈감이 그의 마음을 점령했고, 더 초라한 추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보세요. 비천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니 거기에서 놀라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냄새나고 더러웠던 말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누우니 영광스러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목자들이 몰려와 자기들이 보았던 천사들의 합창과 놀라운 예언을 증언해 줍니다. 동방박사들이 약대를 타고 와서 귀한 예물을 드리고 헤롯왕까지 찾는 등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여관 주변과 냄새나는 마구간은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영광스러운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마, 요즈음 식으로 표현한다면 세계 각국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 경쟁하는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 여관 주인은 가슴을 치며 "아, 내가 이처럼 미련한가? 아까, 저 아기 아빠가 와서 사정할 때 안방이라고 내 줄 것을 공연히 다른 사람에게 내주었구나."라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회는 일생동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누우신 곳은 너무나 비천한 곳이지만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 곳은 역사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곳에는 비천이 변하여 영광스러운 곳이 됩니다. 어둠이 변하여 빛이 빛나며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영원한 저주가 변하여 영원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비천과 소외, 낙심과 절망의 마음이었으나 예수님을 모시고 나니 이상하지요.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스카 써번티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제 속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자라가면서 그는 강력 범죄로 열 일곱 차례나 감옥을 드나들었습니다. 감옥의 정신과 의사들도 오스카는 구제 불능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틀렸습니다. 어느 날, 오스카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은 오스카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스카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었고, 차츰 친절하고 사랑 많은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그는 감옥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워위크 감옥 목사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 감옥의 매달 세 번째 토요일 밤은 "오스카의 밤"입니다. 재소자들은 다 모여 오스카의 메시지를 듣고, 열렬하게 복음 성가를 부릅니다. 그들은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진지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당의 제단 앞으로 자유롭게 걸어 나갑니다." 오스카의 변화, 많은 전문가들이 몇 년을 두고 상담을 통하여 이루어보고자 했으나 실패했던 그 일을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순간의 회심을 통하여 이루어내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변화되었습니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이번 성탄절을 그 기회로 삼으셔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교만이나 세상의 욕망, 자랑들을 다 비우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죄나 열등의식, 낙심이나 절망, 등 비천함들을 부끄러워 여기지도 마십시오. 내 누추한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아가 마음 문을 여시고 이 냄새나는 말구유 같은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다. "오, 주여, 이 누추한 곳이라도 주님을 모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지체 없이 들어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삶을 영광스러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환자에게 치료의 손길을 "이번 성탄절엔 예수님께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치료하시는 손길로 오시길 소망합니다" 지난 8년 동안 재생 불량성 빈혈로 투병중인 아들의 아픔을 속 깊은 아버지의 정으로 지켜온 42세의 어느 집사님은 소외된 자를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이번 성탄절엔 절망 속에 희망의 꽃을 피워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2∼3주에 한번씩 병원에서 수혈 받는 아들이 남모르는 통증으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합니다.“아빠 미안해요. 그래도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요. 물론 수치가 떨어진 것은 나쁜 것이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더 기도를 열심히 하게되고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질 거예요. 전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기뻐요” 아버지는“처음엔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는 원망의 기도를 했지만 이젠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시련 중에도 기쁨과 은혜가 존재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장 내에 양육반을 만들어 1주일에 한번씩 초신자들을 양육하고 있고 그의 양복주머니 속엔 사영리 전도책자가 들어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그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아들이 완치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소멸해 가는 촛불을 보고 있는 심정이지만 내 영혼이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는 그는“이번 성탄절은 고통 중에도 낙심치 않게 하시고 사명을 깨닫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는 절기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연합성가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찬양을 통하여 주님 오심을 축하하며 기뻐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성가대의 찬양이 거룩한 천사의 모습과 천사들의 마음으로 불려진다 해도 우리들의 찬양은 죄인들의 찬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탄의 은혜를 아름답게 보답할 수밖에 없는 감격은 구원받은 죄인일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지키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에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심령이 가난한자 가 되고,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구원함을 얻기 위하는 마음으로 주셨습니다. 이 땅에 이미 오신 예수, 앞으로 다시 재림하실 예수, 언제나 찾기만 하면 내 가운 데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우리의 구주가 되어져야 합니다. 유대인처럼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지 말고 예수님께로부터 책망 받고 지적 받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한해가 끝나고 새해가 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새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시작할 때 새로움이 옵니다.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구주가 되신 예수가 누구인지를 다시 깊이 생각해 보시고 왜 오셨는지 깨달을 때 새로운 시간의 선물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성탄의 큰 선물인 예수를 바르게 이해하고 신앙인으로서 은혜를 입고 나누어주면서 하늘을 이 땅에 심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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