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오래 참으심
2001-12-18 14:25:53



베드로후서 3:15-16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아버지와 집 나간 탕자의 말씀은 너무나 위대하여 그 말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한 부잣집의 작은아들이 때도 안 되었는데,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받아 가지고 먼 타국 땅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 재산을 창기와 함께 다 탕진해 버리고 살길이 없게 되자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돼지의 밥을 먹으며 돼지와 함께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돼지의 밥도 풍족하지 못하여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귀한 집의 도련님이 돼지치기 신세가 된 것은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편 아버지는 큰 부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파송해서 아들의 처지와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주석학자들은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날린 것도 보고 받았고, 돼지치기가 된 것도 보고 받았지만, 아들을 데리고 오면 그 아들이 언제 또 집을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아들이 회개하고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부름하는 사람이 달려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주인님, 도련님께서 오고 있습니다.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멀리서도 그 아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달려간 아버지가 돼지 냄새가 나는 더러운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너는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요, 죽었다가 산 아들이라."
그리고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을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릴 가치가 없는 아들입니다. 그의 형이 보기에도 그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창기와 함께 재산을 날려버린 동생이니 형도 그를 미워했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의 친형도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며 기다렸다가 돌아오니 안아 주고 용서해 주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에는 쓰레기 같고, 방탕하게 막 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불심판을 받아 마땅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는 만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목사님이 불행하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만 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는데, 그 큰 교회의 목사님이 불행하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밖에 구원받을 백성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고, 그들을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답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목회를 해 왔는데,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저는 영혼 구원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느꼈습니다.
큰아들이 보기에 작은아들은 쓰레기이고,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귀한 재산을 말아먹은 망나니, 벌을 받아 마땅할 인간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방탕하게 막 살아도 그들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어찌 악인이 그 악 가운데서 죽는 것을 원하겠느냐? 내가 어찌 악인이 돌아와 회개하고 살기를 기뻐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18장 22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민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처음에는 이 말씀을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이 말씀 앞에 서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만일 베드로 시대에 환난과 핍박을 받던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대로 그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불의 심판이 있었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러면 양곡교회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을 우리는 맛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기다리던 대로 그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의 종말이 왔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만일 5년 전에, 10년 전에 이 세상의 종말이 왔다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10년 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우리 교회만 해도 5년 동안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5년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다면 그 사람들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아니! 어제 세상의 종말이 왔다면 오늘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어떻게 되느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동네 사람들과 형은 탕자에게 관심도 갖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탕자에게 관심을 갖고 오래 참으며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막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 눈에는 망해도 괜찮은 사람, 불 심판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시면서 지금도 그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송으로 선교하고, 문서로 선교하고, 선교사도 파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도록 지금도 종말을 미루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인내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루 늦게 오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까? 한 달 더 늦게 오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구원을 받는지 모릅니다.
먼저 믿은 우리는 주님께서 일찍 오시면 좋습니다. 그러나 내일 구원받을 사람, 다음 달에 구원받을 사람이 좍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어서 오세요."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마음을 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주님께서 곧 오실 줄 알고 만나기만 하면 "우리 주님께서 곧 오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곧 오십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만일 그 인사대로 우리 주님께서 오셨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늘 말씀 때문에, 우리 주님의 인내하심 때문에, 오래 참으심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았고, 만민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을 받았고 성령을 받은 우리도 오래 참으면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으면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 말씀을 마무리 하다가, 우리 나라에 선교사님들을 보내어 준 미국, 영국,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와 그 선교사님들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들과 선교사님들에게 크게 빚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만일 그분들이 인내하지 않고, 오래 참지 않고 그냥 갔으면 우리는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선진국의 귀족들, 인텔리들이 정말 열악한 우리 나라에 와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백 수십 년 전에 우리 나라가 얼마나 미개했습니까? 그때 우리는 거지처럼 살지 않았습니까? 선진국에서 잘 살던 그분들이 미개한 우리 나라에 와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음식도 얼마나 달랐습니까?
한 선교사님이 교인 집에 심방을 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빨간 고추장이 잼인 줄 알고 발라먹었습니다. 여러분은 고추를 고추장에도 찍어 먹지만, 서양 선교사님이 고추장을 먹었으니 얼마나 매웠겠습니까?
또 깡패들이 코쟁이라고 돌을 던지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에게도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선교사님은 할머니가 은혜를 받고 그렇게 우는 줄 알았습니다. 예배 후에 선교사님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은혜는 무슨 은혜. 선교사님의 눈을 보니 죽은 우리 집 염소의 눈이 생각나 울었어요."
선교사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때 그분들이 힘들다고 우리 나라를 그냥 떠났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여러 어려움이 많았지만, 선교사님들이 그냥 돌아가지 않고 참고 참고 오래 참아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들이 교회를 세우고 대학교를 세우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만국에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기도로 협력하고, 방송과 문서를 통해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금방 열매가 없어도 인내해야 합니다. 어떤 선교 구역에서는 8년만에 한 영혼을 구원했답니다. 그래도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가족을 구원하는데도, 내 친구를 구원하는데도, 세계 만민을 구원하는데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내는 사랑의 구체적인 열매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인내는 성령님의 구체적인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으면서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래 참음은 모든 삶에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신앙 생활하는데 뿐 아니라 범사에 인내하면 승리하고 성공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98년도는 박세리의 해라고 한다면, 99년도는 김미현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미현은 키도 작고 팔도 짧아서 아무리 힘을 다해 공을 쳐도 다른 선수보다 30∼40미터는 덜 나가는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늦게서야 작은 회사에서 그를 도와 주었지만, 그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비행기 대신 고물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또 호텔비가 없어서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식사 값을 아끼기 위해 전기 밥솥을 숨겨 가지고 다니면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인내하고 인내해서 마침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내가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김미현이 될 수 없었습니다.
멕시코의 37세 된 여성 칼베스가 이번에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학생이었습니다. 방을 구하지 못해 복도에서 자고, 배가 너무 고파 구걸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열심히 공부하여 큰 회사의 사장이 되고, 장관이 되었습니다.
부부 생활에도 인내가 없으면 이혼하게 됩니다. 부부 생활하는데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부부가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신혼 여행을 갔다온 신혼 부부가 제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 신랑 신부가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부도 살다 보면, 서로 다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면 승리합니다.
세계에서 자녀 교육을 가장 잘 하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인내하며 삽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갑니다. 다른 곳에 가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어도,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자녀를 위해 집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은 군인 출신이어서 억셉니다. 그러나 남편과 싸울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인내합니다. 감정이 폭발할 듯이 화가 나도 "아이들이 잠든 뒤에 공원에 나가서 싸우자."하며 참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잠든 후에 부부가 공원에 나가면 싸울 마음이 나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부는 그 좋은 분위기에 마음이 변해 정답게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답니다. 또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기 위해 남편의 의자에는 절대로 앉지 않는답니다. 남편이 3개월간 출장을 가도 그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한답니다.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그 의자에 올라가면 매로 때린답니다. 그 정도로 남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존경할 점이 없고 능력이 없는 남편이라도 자녀 교육을 위해 남편을 왕처럼 받드니,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안 될 수가 있겠습니까?
자녀 교육도 인내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마음대로 말하고 마음대로 기르면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내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학생, 고시를 치르는 수험생도 인내하지 않고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30년, 40년 인내하는데 피어나지 않는 교회가 잘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 정말 답답한 일을 만나도 인내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우리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저도 엎드려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인내하니,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교회가 이렇게 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인내 없이는 교회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인내 없이 어떻게 교회를 섬기겠습니까?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자동차로 저를 태워주신 한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 친구는 서울 상대를 졸업한 사람인데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이민 생활 19년 동안에 교회를 스물 세 번이나 옮겼습니다. 그렇게 까다로운 친구라 천국에 갈지 모르지만, 아마 천국에 가도 맞지 않을 겁니다."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하나님, 제 영이 살기 위해 교회를 옮깁니다."하고 10년, 20년만에 교회를 한 번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1년에 한두 번씩 어떻게 옮겨다닌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어느 교회에 간들 맞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아시고, 서머나 교회를 아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그대로 다 아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절에서 2절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양곡교회에서 충성하고 계시는 여러분을 아십니다. 양곡교회의 장로님, 안수 집사님, 권사님, 집사님, 교사, 성가대원, 구역장 모두를 아시고, 그 충성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얘야, 어디서 어떻게 하다 왔냐?"하시면 "예, 양곡교회를 섬기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스물 서너 곳을 옮겨 다녔다면 그때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교회 생활이나 가정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나 인내가 없으면 온전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착실한 집사님이 제게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아주 좋은 직장에 근무하는 집사님입니다.
"목사님,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이 저를 싫어합니다. 회식하는 자리에도 가지 않지요, 단합 대회에도 가지 않지요, 술도 마시지 않지요, 그러니까 저를 자꾸 소외시킵니다. 저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두려고 합니다."
"집사님, 그것은 집사님의 오판입니다. 그들이 집사님을 소외시켜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사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집사님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너무 귀하게 사니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대로 직장을 다니세요."
"정말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요."
몇 달 뒤에 그 집사님이 승진했습니다. 또 얼마 후에 승진했습니다. 지금 그 직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간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이 인내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겼으면 지금처럼 어려운 이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인내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인내로 살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내해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인내의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잘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이사야가 예언하고 요엘이 예언하고 다윗이 예언하고 미가가 예언했지만, 그들도 몰랐습니다. 성령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니 '아하!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되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가가 예언한 대로, 다윗이 말한 대로 예수님께서 오셨구나.'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은 몇 백년이 흘러야 깨달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또 내가 자라야, 내 믿음이 자라야 깨달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을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만 알아도 우리는 넉넉히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성경을 다 알겠습니까? 다 알려고 억지로 풀다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잘 모르는 성경이 있어도 인내하고 기다리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어 주기도 하시고, 이런 저런 상황을 통해 깨닫게도 해 주십니다.
매사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억울하다고 자살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윗이 골리앗 죽이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웠는데 역적의 누명을 쓰고 10년 간 고생하며 살 때 자살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야곱이 20년 간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열심히 일했는데도 집 한 채도 얻지 못했다고 낙심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내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꽃 피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하나님을 닮아 인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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