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5일 (월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Home > 기사메일보내기


제목
받는 사람 이름
받는 사람 Email
보내는 사람 이름

cancel


기도로 나타난 한나의 믿음
2001-12-15 21:09:54   read : 17512

사무엘상 2:1-10


[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 2:1-10>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때 가장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또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사사였습니다. 사사라는 말은 최고의 통치자란 뜻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왕과 같은 위치에서 백성을 다스려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왕과 같은 일을 맡아서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에 이족들이 끊임없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쳐들어오기는 했지만은 그러나 사무엘의 기도와 사무엘이 세운 그 왕들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나갔을 때는 언제나 승리를 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믿음에 대해서 1장과 2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의 기도로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 인격, 교양이 말속에 다 들어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기도 속에는 그 사람의 신앙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한나의 기도 속에 들어있는 그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보면,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랬습니다.
한나의 기도에서 보여지는 그의 믿음은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즐거움을 얻고 누구로 인하여 기쁨을 얻습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기도하여 얻은 사무엘로 인하여 기뻐하며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구한 어떤 것, 그것을 얻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아본 일이 있습니까? 그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물이 좋습니까? 그 선물을 나에게 주신 그 분이 좋습니까? 선물만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선물을 안주면 그 사람 미워합니까? 저는 선물을 많이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선물보다는 그 선물을 주신 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저한테 선물 받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다 못 해 생일카드라도. 그랬을 때 생일카드를 보고 카드가 좋았습니까? 아니면 목사가 그 속에 써낸 성경구절이나 여러분들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목사가 좋았습니까? 카드가 예쁘다, 카드가 좋다하고 카드만 만지작거렸습니까? 아니면 카드를 보낸 사람이 좋았습니까? 물어보는 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한나는 자기가 구한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를 나에게 주신 여호와로 인하여 나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병을 고침받았다든지 맺힌 문제가 풀렸다든지 막힌 길이 열렸다든지 어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든지 그래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무언가를 얻은 것때문에 지위를 얻었거나, 명예를 얻었거나, 재물을 얻었거나 돈을 많이 벌었거나 권세를 누리거나 그런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것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37:4절 말씀에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인격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그 분을 함께 좋아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그 분에게 실망을 시키지 않겠다는 책임의식도 가집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을 좋아하고 그 분을 기뻐하고 그 분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자존심이 대단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분이 아닌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이 한나의 기도에서 나타난 그의 믿음은 여기 보면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그랬습니다. 여기서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다는 말은 자기가 아들, 사무엘을 낳기 이전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 일로 인해서 자기 이름이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수치 속에 지냈는데 이제는 내 기도를 들어주신 여호와를 인하여, 또 아들을 얻음으로 인하여 내게는 영예와 능력이 주어졌다. 이 뿔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능력을 상징합니다. 어떤 명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을 때는 수치가 돌아옵니다. 소외감을 갖게 됩니다. 열등의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떳떳함이 생깁니다. 수치가 물러갑니다.
그런데 내 뿔을 높이신 나로 명예롭게 하고 나로 힘있게 하신 삶의 의욕을 갖고 하고 용기를 얻게 하신 것은 내 스스로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내 뿔을 높이셨다. 날마다 모든 일마다 모두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히스기야라고 하는 왕이 있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군대장관 랍사게와 함께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욕하는 그들의 편지를 받아서 성전에 들어가서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도움을 청합니다. 간구합니다. 철야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18만5천명 앗수르 군대를 다 멸했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의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쳐주시며 15년동안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그런데 한편 바벨로니아의 왕이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가 나았다 하는 이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서 몇 사람의 사신을 보냅니다. 그때에 그 사신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의 건강을 이렇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높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 높이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과 보배를 자랑합니다. 무기고의 문을 열어 우리가 이렇!
게 군사력이 있고 무력이 있다,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예언합니다. 네가 자랑한 그 모든 것을 바벨로니아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훗날 그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주님만 자랑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지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자랑하면 자랑한 것때문에 꼭 망합니다.

여러분에게 남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까? 그 재능을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줄 믿고 그 재능으로 인해서 주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이루었을 때 자기 힘으로 얻은 것처럼 하나님 외의 그 누구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힘, 재물, 지식, 지위, 명예, 그 어떤 것도 자랑하면 주님은 질투하십니다. 주님을 질투나게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요 누구든지 나보다 아내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심지어 자기 목숨을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마가복음 10장 28절 이하 말씀보면 주와 복음을 위해서 처자나 전토나 아들이나 딸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금세에서 백배나 얻고 핍박을 겸하여 얻으며 내세의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나의 믿음으로 변하고 바뀌어지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한나는 내 뿔을 하나님이 높였다고, 내 잃어버린 이름을 하나님이 높이셨다고 그렇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또 내 원수들을 향하여 내 입이 크게 열리게 했다,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나는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브닌나가 자기를 격동할 때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고 보니 입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벙어리된 자에게 주님께서 에바다! 열리라고 외쳤을 때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이 기도하게 되고, 찬송할 줄 모르는 사람이 찬송하게 되고, 전도, 예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던 사람이 예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입이 열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나처럼 입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입이 열려야 합니다. 그가 브닌나에게 구박받은 이야기가 1장6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심으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전날의 한숨 근심이 변하여 이제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2절에서 주님밖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외칩니다. 한나의 기도 속에 나타난 그의 믿음, 구원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외칩니다. 2절에 여호와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아멘.
구원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우리 죄를 담당할 자가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창조자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말씀만 순종합니다. 주님만 따라갑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하면 한나가 기도해서 응답받았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다음에 한나의 기도 속에 나타난 그의 믿음은 3절에 나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니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아멘.
그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았냐 하면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저울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무게가 나가지 않으면 버립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서 5장 20절 이하에서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 왕이 자기 부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성물, 금으로 된 그릇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술에 취했습니다. 그날 밤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서 벽에다 무슨 글을 썼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모릅니다. 그 글을 해석하는 사람은 다니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글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이 메네라는 말은 세어보고 끝나게 했다. 메네 메네 반복한 것은 강조한 것입니다. 세어봤다, 세어봤다, 그런 뜻입니다. 데겔이란 말은 무게를 달아보니 모자라서 치워버렸다, 우바르신은 무어냐, 나라가 나뉘어서 다른 데로 넘어간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고 그래서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니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함으로 너를 하나님이 버렸다, 그리고 네 나라가 쪼개진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개인에게도 주님이 하신 경고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대한 주님의 경고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에 대한 주님의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실을 주님이 갖고 있는 저울대에 우리를 올려놓고 주님?
?원하는 만큼의 무게가 나가지 못하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겼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주님의 저울대 위에 다는 날이 왔습니다. 그걸 평가하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만족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겨서 하나님의 저울대에서 만족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한 달란트만 더 남겼더라면 하나님의 저울대에서는 만족했을 것인데 그는 남기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니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일이나 하나님 앞에 연보를 드리는 일이나 직분에 충성하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에나 하나님의 저울을 갖고와서 하나 하나 재어보고 세어보고 달아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버립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므나비유에서는 충성된 종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겼기에 하나님 저울대에 만족하였음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리니 하면서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충성된 자로 인정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도 열 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충성된 자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복, 하나는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하기 위한 것이니 어떤 일,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고 보람된 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하면서 하나님 일에 바쁘고, 하나님 일이 막 밀리고 하는 사람은 이미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생활하면서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 난 할 일이 없다.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일 많은 것이 복입니다. 회사에도 일 많아야 복이고, 공장에도 일 많아야 복입니다.

한나의 믿음은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한나가 울었던 것, 그 눈물이 하나님의 저울대에 올려졌습니다. 한나의 기도의 양이 금향로에 담겨지는 그 무게가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할만큼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으로 그는 외칩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지 그러나 성령님은 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감독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하나님, 사람이 보는데서만 열심이 있는 것과 사람이 안보면 게으른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이요, 위선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보든지 안보든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하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할만큼 행동을 해야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주여! 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 행함의 저울대위에 우리가 올라가서 하나님 편으로 우리가 기울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전도라고 하는 그 부분을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올려놓는다면 어떤 무게가 나가겠습니까?
베드로는 하루에 3천명씩 전도했다고 합니다. 무디(D. L. Moody)는 백만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3백만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생에 몇 명을 전도합니까? 전도의 저울대위에 나는 과연 얼마나 나갈까? 주님이 기대하는 데까지. 벨사살왕은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세어보고 달아보니 모자라서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리니 네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는 이런 복된 음성이 들려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언제 달리는가? 그것은 시험을 당할 때 저울대에 달립니다. 그 사람이 유능한 사공인지 아닌지는 홍수 날 때 노 젓는 모습 보면 알고, 힘이 얼마나 센지는 씨름 시켜보면 알고, 실력을 알려면 시험 쳐보면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 저울대 위에서 만족할 만큼 무게가 나갈 수 있는지 언제 드러날 수 있느냐면 시험 당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저울대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시험해보는게 바로 저울대위에 놓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모자란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믿음을 보였으니 그 아들을 믿음으로 바쳤습니다. 바쳤을 때 신바람 나서 바쳤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인정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킬 때 모든 말씀을 다 기쁨으로만 지키는게 아닙니다. 때로는 억지로 십자가 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마지막 한 움큼 되는 밀가루 가지고 음식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할 때 콧노래 부르면서 신바람 나서 갖다 바쳤다는 말이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 내 아들 굶고 있는데,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한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 지겠다고 달려나와서 십자가 졌습니까? 구경나왔다가 억지로 붙잡혀서 십자가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억지로 십자가 져도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기쁜 것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내가복음에 사로잡혀서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부담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눈물 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하나님 편으로 기울어지기 위해서 순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두 마음으로 갈등에 빠집니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깨어있고 말씀에 무장되어 있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해 하고 좁은 길로 갑니다. 그런데 영성이 약한 상태에서 시험을 만나면 넘어져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시간마다, 매일마다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그 때 여러분, 주님을 위하는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있어서 때로는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고, 기쁜 마음이 아니고, 억지로 할 때도 있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억지로라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제가 요한 웨슬레의 전기를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1738년 5월24일 올드스게이트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에서 수요일 밤예배에 요한 웨슬레가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때로는 교회 가고 싶지 않은 때도 있지 않습니까?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휘몰아칠 때도 그렇지만 하여튼 이러저러한 일로 교회 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겼습니다. 그래도 오늘 삼일기도회니까 가야지! 그런데 그 날밤에 주님을 만나고 그 날밤에 성령 받고 그날 밤에 새로워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제 경험도 평신도 때 때로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힘들어 오늘만은 쉴까? 오늘은 그만둘까? 그렇게 생각이 들어왔을 때 물리치고 그 날 가면 그날따라 눈물 콧물 흘리고 은혜 받았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교회 오고 싶을 때도 오십시오. 오기 싫을 때도 오십시오.
그러면 더 은혜 받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밤에도 오고 싶어서 온 분도 있지만, 그냥 마지못해서 오신 분도 있을텐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더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기쁨으로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으로 하면 좋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 기뻐서 찬송 부르면서 십자가 지셨습니까? 넘어지고 쓰러지셨다는 그 말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꼭 자기 감정에만 맞추지 말고 말씀에 맞추어 사십시다. 한나의 믿음은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감정은 자꾸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그 믿음을 그가 가졌습니다. 기도하는 한나의 기도 속에서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을 볼 수 있는데 그는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5절 말씀에,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들은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식을 둔 자는 쇠약하도다. 이것은 역전된 새로운 변화를 말합니다. 전에 유족하던 부자였던 사람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잉태치 못하던 임신이 되지 않던 자는 자녀를 일곱을 낳았다. 한나는 전에는 정말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대로 행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는 일곱 자녀를 낳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가 일곱을 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이란 말은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 사무엘까지 여섯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하나도 낳지 못하던 한나가 육남매를 낳았습니다. 결국 나중된 자가 먼저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열매가 없고 지금은 내가 곤고한 것같고 누군가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은 것같고 너무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한나가 아이를 낳기 전에 번민에 쌓이고, 번뇌에 쌓여서 울면서 몸에 경련이 일어나기까지 기도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중된 자로 먼저 되게 하신 6남매의 자녀를 낳게 하신 그런 은혜가 있는 것이니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에 나타난 한나의 믿음, 6절에서 8절 말씀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느니라.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느니라.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한나의 이 기도 찬송, 찬송하며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 속에서 위대한 믿음을 발견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죽고 사는 것, 부자 되고 가난하고 높아지고 낮아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 믿음이 위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욥이 그 믿음을 가졌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라. 사람이 어떠한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모든 것은 내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따라서 죽은 믿음을 가지면 어떤 역사도 없습니다. 적은 믿음의 사람은 책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그런 사람에게는 표적이 따르는 역사가 있게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한나의 슬펐던 날들이 기쁨의 날들로 바뀌어졌습니다. 가장 상처많은 여인이 가장 영광스러운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사람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이나 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주 앞에 돌렸던 영광보다 이후에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손에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습니까? 살고 싶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로 낙인찍히면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어 갑니다. 헤롯왕을 하나님의 사자가 치니 충이 먹어 죽었더라. 그러나 다니엘은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했더니 사자굴에서도 살려 주셨더라. 죽었던 나사로, 나흘이 되어서 몸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주님이 살리셨더라. 하나님 앞에 쓸모있는 사람, 하나님의 교회에 공적인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면 병든 사람도 고쳐 쓰시고, 망한 사람도 복빌어 쓰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사람은 죽기까지 충성하고 전부 주앞에 맡겨드리고 말씀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3: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또한 내가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하나님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을,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리라.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우리 모두 한나가 믿었던 하나님, 우리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한나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한나에게 복주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복주실줄 믿습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기도합시다. 우리도 한나처럼 우리의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합시다. 우리도 한나처럼 제사장을 의지하며 나는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무릎꿇고 기도를 받는 이런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실 때 한나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도에 나타난 그의 믿음이 9절-10절에 나옵니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중에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이 한나의 입을 통해서 장차 나타날 왕, 거룩한 왕, 다윗이 왕으로 성장될 것을 예언했고, 이 다윗은 결국 기름부음 받은 자로 표현한 것은 장차 메시야가 올 것까지 예언했으니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장래 일까지 말하게 되었습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더니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까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믿음을 갖고 살면 육신의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신령의 세계의 비밀도 알려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 그리스도 그 분이 거룩한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는 날, 한없는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만족함을 줄 것이니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dmin



프린트하기 독자한마디


이전으로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